더 북한 시론

대북정책, 이젠 중심 잡아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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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은 2004년 6월 취임하자마자 곤욕을 치렀다. 북한으로부터 ‘혀끝을 잘못 놀린 데 대해 전 민족 앞에 사죄해야 한다’는 등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을 들었다. 북한의 비위를 거슬리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정 장관은 김일성 주석 조문 방북과 관련, “어느 쪽에도 도움이 안 된다”며 불허했다. ‘남북 간 실용주의적 접근’을 강조해 북한의 ‘민족 공조’ 주장을 무색하게 했다. 그러나 1년쯤 지나자 상황은 급변했다. 정 장관은 평양에서 열렸던 6·15 행사에 정부 대표단장 자격으로 참석했다. 특히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귀엣말을 나누는 모습까지 국민에게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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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월 초 북한이 총리회담을 전격 제의해 왔다. ‘10·26’으로 조성된 혼미한 남측 정세를 타진해 보려는 의도였다. 실무대표 접촉이 9차례 열렸으나 북한은 “광주에서 손에 피묻은 정권과는 대화할 수 없다”며 접촉 중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3년여 지나자 상황이 변했다. LA 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을 위한 체육회담, 경제회담 등을 제의해 왔다. 85년엔 허담 노동당 비서가 극비리에 서울로 와 남북 정상회담과 관련된 김일성 주석의 친서를 전두환 대통령에게 전하기까지 했다.

  앞의 두 사례는 북한이 기존 입장을 어떻게 바꾸는지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는 북한이 원하는 것을 얻었을 경우다. 북한의 파상공세에 정 장관은 유화적인 자세로 돌아섰다. “북한의 반발을 이해하고 유감을 표명한다” “앞으로 탈북자들이 대거 이송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비료를 포함한 대규모 대북 지원 의사도 천명했다. 특히 매년 200만kw의 전력을 직접 공급해 줄 용의도 있다고 전했다. 정 장관에 대한 북측의 비난은 눈녹듯 사라져 갔다.

다른 하나는 급격한 국내외 정세 변화에 대한 적응 차원에서다. 북한은 83년 저지른 아웅산 테러로 더욱 깊어진 국제적 고립을 타개할 필요가 있었다. 80년대 초반부터 경제난이 가시화되자 북한 지도부는 중국식 개혁개방에 눈을 돌렸다. 이를 위해선 남측과의 대화를 통한 남북관계의 안정이 요구됐다. 전두환 정권의 손에 피가 묻었다고 대화를 거부할 처지가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올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제시한 대북정책 기조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6·15 공동선언’과 ‘10·4 정상선언’의 존중과 전면 이행에 대해서도 언급이 없었다. 북한의 과거 행태를 감안할 때 북한이 기존 입장을 철회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단기적으론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정부의 향후 대북 스탠스가 주목된다. ‘대화를 위한 양보’냐 ‘대화에 연연치 않는 원칙 고수’냐의 차원에서다.

정부는 출범 초기 대북정책에 대한 철학 부재와 앞뒤 안 재는 강경책으로 오락가락했다. 식량지원 문제에서 북한의 선(先) 요청을 요구했다가 철회했다. 국제회의에선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을 놓고도 혼선을 빚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나름대로의 원칙이 정립됐다. 첫째 6·15와 10·4 선언은 다른 남북 간 합의들과 함께 이행을 논의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인도적 차원에서의 대북 식량지원은 북한의 요청이 없어도 언제든지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북핵문제 진전에 따른 남북 경협을 추진한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남북 간에 다소 간의 어려움이 있지만 남북관계를 당당하게 정상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 장관 식 유화책보다는 원칙 고수 쪽에 무게를 실은 것 같다. 그렇다면 더 이상 흔들려선 안 된다. 다만 북한을 쓸데없이 자극하는 언행은 삼가야 한다. 노무현 정권 초대 외교장관이었던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원칙있는 대북 포용정책’을 강조한다. 그래야 북한이 남쪽을 우습게 보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입지를 나름대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임기 내 이 정권이 명심해야 할 충고다.

안희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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