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발전전략' 청와대 보고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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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 경제의 「장미빛 청사진」이 다시 나왔다.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지금까지는 경제개발 전략이 5년 단위로 짜여졌는데,이번에는 처음으로 장기적인 기반에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6일 김영삼(金泳三)대통령에게 보고된 21세기 경제 장기구상은 작년 5월 청와대의 지시에 따라 작업이 시작됐다.
좀더 장기적인 안목에서 우리 경제의 비전을 짜고 이를 위한 발전전략을 만들자는 뜻에서 나왔다.한국개발연구원(KDI)의 보고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적으로는 재정경제원이 작업을 주도해 정부의 의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용을 보면 큰 방향은 잘 잡혔다는 평가를 받을 것같다.민간주도의 경제활동을 강조하고 있으며 15개 과제 가운데 정부 혁신과 규제완화를 으뜸으로 꼽고 있다.
보고서는 특히 이런 구상이 실현되기 위해선 대기업 여신관리제도와 업종전문화 같은 직접적인 경제력집중 억제 시책보다 간접적인 규제로 바꿔갈 것을 제안하고 있다.
또 정보화 촉진과 선진형 노사관계 정립.사회간접자본 확충.환경오염 방지.한민족 경제공동체 형성 등이 15개 과제에 포함돼있다. 문제는 실현가능성 여부다.
우선 가장 중요한 재원에 대한 조달 방안이 없다.
막연하게 지난해 20.7%였던 조세 부담률이 25%선으로 높아지리란 예상 정도다.따라서 잘못하면 상당수가 「희망 사항의 나열」에 그칠 수 있다.
통일 문제에 대한 고려도 미흡하다는 지적이다.보고서는 남북한의 국가 체제는 유지되고 경제가 점진적으로 통합되는 「2국가 1경제」라는 전제 아래 통일 비용을 따지지 않았다.
이런 점들은 앞으로 공청회를 거쳐 최종 보고서를 만들 때 집중적으로 보완돼야 할 부분이다.
15개 과제 가운데 정부및 공공 부문의 획기적인 변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들이 많다.따라서 정부 혁신과 공공기관의 생산성 높이기를 얼마나 이뤄낼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이들 과제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정부의 강력한 의지도필수적이다.이 과제들을 장기적으로 꾸준히 추진해야 할텐데 정권이 바뀌면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이번 구상도 실제로는 두어달 전에 만들어졌으나 그동안 총선등각종 현안에 밀려 첫 관문인 대통령에 대한 중간 보고가 지금까지 4차례나 연기되는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경제 선진국이란 지수상에서 앞선 나라가 아니다.기업들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경쟁하며 국민들이 편리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릴 수 있어야 선진국이라 할 수 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1만달러 시대에 들어섰다지만 많은 국민이 실감하지 못하고 상대적인 불만을 느끼고 있다.
따라서 21세기 장기구상은 장미빛 청사진의 나열보다 철저한 자기 반성에서 출발,「빨리 빨리」문화에서 비롯된 부실을 털어내고 현상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 한국경제의 새로운 좌표를 짜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양재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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