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에서 자유로운 나라는 없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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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28면

브라질과 러시아 증시가 심상찮다. 원자재값 상승에 힘입어 5월 말 사상 최고치 행진을 하더니 급락세로 돌아섰다. 다른 펀드에서 돈을 빼 이들 증시로 갈아탔던 한국 투자자들도 울상이 됐다. 한국펀드평가에 따르면 올 들어 해외 펀드 설정액이 감소하고 있는 가운데 브라질과 러시아를 주 투자대상으로 하는 브릭스펀드만 순증 추세를 보여 왔다.

러시아ㆍ브라질 증시 급락

두 나라의 증시가 급락한 이유는 원유를 중심으로 한 원자재 가격의 하락 반전이다. 한때 배럴당 150달러를 위협하던 원유는 지난주 113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밀·옥수수 등 곡물과 광물류도 고점 대비 20∼30% 떨어진 게 적지 않다. 자원 부국인 러시아와 브라질엔 달갑잖은 소식이다. 외국인들도 발을 빼고 있다. 브라질 증시의 외국인 순매도 규모는 6월 47억 달러에 이어 7월엔 48억 달러에 달했다.

내부적인 이유도 적지 않다. 두 나라 역시 전 세계를 괴롭히는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러시아의 물가 상승률은 14%를 넘어섰다. 브라질은 6.1%로 세 자릿수였던 10년 전과 비교할 순 없지만 최근 2년간 가장 높은 수치다. 물가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잇따라 올리면서 성장이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2002년 부터 지속된 달러 약세로 높아진 통화가치도 매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러시아엔 그루지야와의 전쟁 악재까지 겹쳤다.

파이낸셜타임스는 13일 “미국의 6월 무역적자가 수출 호조에 힘입어 전달보다 10% 감소했는데 이런 기조가 계속되면 브릭스의 무역 흑자 규모가 위축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인들로선 마침 달러가 강세로 전환하면서 매력이 커진 뉴욕 증시로 되돌아가고 싶은 상황이다. 2003년 이후 나란히 6배씩 올랐던 가격 부담도 단기적으로 이들 증시에 대한 전망을 어둡게 한다. 이에 따라 이들 지역에 투자하는 펀드 중 가장 규모가 큰 슈로더브릭스 펀드는 지난 달 말 브라질과 러시아 비중을 각각 0.9%포인트와 2.7%포인트 줄였다.

남미 시장의 전문가인 JP모건체이스는 지난 6월 브라질에 대한 투자의견을 중립에서 비중 축소로 낮추고 투자자들에게 브라질 주식을 팔라는 조언을 했다.
장기 전망은 두 나라가 엇갈린다. 러시아보다는 브라질을 밝게 보는 시각이 많다. 유가가 경제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러시아에 비해 브라질의 산업구조가 다양하고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이유에서다. 허재환 대우증권 연구원은 “러시아는 유가 하락으로 기업 이익이 감소할 뿐만 아니라 인구 감소세가 지속돼 유가가 반등해도 생산성 개선에 한계가 있는 반면 브라질은 긴축정책의 영향으로 내수가 둔화할 우려가 있으나 성장 동력은 크게 훼손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나라 증시의 급락은 글로벌 경제의 추세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 준다. 이미 중국과 인도가 세계 경제의 새로운 방파제 역할을 하리라는 기대가 여지없이 무너졌다. 급속히 늘어나는 중산층의 내수를 바탕으로 이들 나라가 수출 둔화를 이겨내고 성장 가도를 질주할 것이란 이른바 ‘디커플링’ 이론은 환상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투자증권 김학균 애널리스트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시작된 경기 침체가 생산 기지인 중국과 인도를 거쳐 자원 기지인 브라질과 러시아에 도달해 침체 사이클이 한 차례 완료됐다”고 말했다.

눈여겨 볼 것은 미국 등 선진국 증시보다 브릭스 증시가 단기간에 훨씬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미국 다우지수는 15일 1만1659포인트를 기록해 지난해 고점 대비 16%가량 빠졌다. 이에 비해 중국 증시는 반토막이 났고, 러시아와 브라질은 지난 5월 이후 석 달 만에 30% 안팎 추락했다. 서브프라임 사태가 쓰나미에 비유되는 이유다. 물이 깊은 먼바다에서 쓰나미는 수면을 수십㎝ 들어올리지만 물이 얕은 해변에선 수십m의 파도를 일으킨다.

문제는 파도가 연속해서 몰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의 금융 경색은 끝이 보이지 않고 있다. 올 들어서만 베어스턴스 사태에 이어 프레디맥·패니메이 유동성 위기, UBS 등 대형 금융회사의 추가 상각이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의 하락세도 계속되고 있다. 중국을 제외한 세계 경제의 3대 축인 유럽과 일본 경제도 침체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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