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두 달간 생이별…결혼 땐 두 의원이 ‘더블 주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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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호 10면

한나라당 김영선 의원과 자유선진당 류근찬 의원은 서로를 ‘사돈지간’이라 말한다. 두 의원의 보좌관이 지난해 12월 30일 부부의 연을 맺었기 때문이다.서른넷 동갑내기인 전정배·조진이씨 부부는 “두 의원께서 주례도 ‘더블’로 보셨다”며 활짝 웃었다. 김 의원(당시 3선)이 초선이었던 류 의원의 ‘정치 선배’지만 미혼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전정배 비서관이 류 의원에게 주례를 부탁했다.

신혼 8개월 전정배·조진이 보좌관 부부

김 의원은 축사를 맡았는데 류 의원이 주례석으로 김 의원을 이끄는 바람에 결과적으로 주례를 두 번 잇따라 본 셈이 됐다. 전 비서관 부부는 “지금도 그때 하객들이 ‘더블 주례 이벤트’ 얘길 한다”며 “평소엔 우리가 의원님 연설문을 작성했는데 그날은 두 분 다 형광펜으로 표시해 가며 정성껏 말씀을 준비해 오셔서 감동했다”고 말했다.

전 비서관 부부는 2005년 3월 과학기술정보통신위 활동을 같이하면서 처음 만났다. 제17대 국회 내내 과기정위를 함께하면서 몰래 사랑을 키웠으니 두 의원이 중매인 역할도 한 셈이다. 의원회관에 청첩장을 돌릴 때도 청색 파일에 넣어 ‘김영선·류근찬 의원실 공동 발의’라고 가져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단다.
“상임위가 같으니까 일정이 비슷하잖아요. 국정감사 때 새벽 3~4시에 함께 퇴근하면서 산책하는 게 데이트였죠.”

‘국감 데이트’ 다음은 ‘결혼 세미나’였다. 우연히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자마자 늦은 나이를 걱정한 양가에서 서둘러 결혼 날짜를 잡았다. 그때가 지난해 12월 3일, 결혼식 27일 전이었다. “대선도 있고 총선 준비도 해야 하고 얼마나 정신이 없었는지….” “세미나 주최하듯 일정별 체크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씩 해결했어요. 복덕방 갈 시간도 없어 집도 대선 날 겨우 구했고요.”

신부는 밀린 일들을 처리하느라 2시간밖에 못 잔 상태에서 결혼식장에 섰고, 첫날밤 신랑은 호텔에서 밤새워 자료를 정리한 뒤 새벽 신혼여행을 떠나는 길에 공항 컴퓨터로 송고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직후부터는 총선 준비에 매달렸다. 전씨는 류 의원의 지역구인 충남 보령으로 달려가야 했다. 결혼한 지 한 달 반, 신부가 결혼하고 맞는 첫 생일날 보령행이 결정됐다.

“마침 일요일이라 데이트하는 셈치고 제가 남편을 보령까지 데려다 주고 혼자 올라왔어요. ‘업무를 놀이로 바꾸기 프로젝트’예요. 하하.”
두 달 만에 총선이 끝나고 함께 살게 되자 다시 신혼이 시작되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총선 뒤에야 가전제품도 들이고 결혼 사진도 벽에 걸었다니 그럴 만하다. 6월이 돼서야 두 사람의 통장을 합치는 ‘잘 살아보세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매달 말 회계보고를 하죠. 모든 카드 내역, 월급 명세서, 현금 사용까지 일목요연하게 첨부자료를 붙여 브리핑합니다.”

보좌관들은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교사·공무원 등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배우자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다. “보좌진 부부가 (양쪽 의원 모두 낙선해) 한꺼번에 실직한 경우도 있어요. 이번 총선 때 두 분 다 당선돼 얼마나 다행인지.”
두 사람은 상대가 보좌진이라 정말 좋다고 입을 모았다. 보좌진은 업무 강도와 스트레스가 높은 특수 직종인 데다 업무상 보안 유지가 중요하다 보니 마음이 맞는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단다.

“어휴. 이런 생활을 보통 여자들은 절대 이해하지 못하죠. 이 사람은 제가 급하게 저녁 약속을 취소해도 따지기는커녕 ‘의원님 오셨어?’ 딱 한마디만 하거든요.”
“제가 결혼한다니까 일을 그만두는 줄 아시더라고요. 곧 총선인데 매일 밤새우고 지역에 나가 있고 그걸 이해해 주는 시댁이 어디 있겠느냐면서요. 같은 보좌진이라니까 ‘아, 그럼 계속 하겠네?’ 하던 걸요(웃음).”

지난 국감 때 두 사람은 연인이었다. 이번 국감 때는 부부다.
“국감 때는 보름 동안 의원실에서 지내며 하루 2시간씩 잤죠.” “밤에는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 졸린 눈으로 의원회관을 다니다가 아침이면 정장으로 다시 갈아입고….”
올가을 이들 부부는 의원회관 4층과 7층에서 밤마다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각방 생활을 할 것이다. 가끔씩 복도에서 ‘여보’를 만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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