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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에디터 칼럼

올림픽에는 만 명의 스승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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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삼인행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

중국에 와서 며칠 있다 보니 ‘공자님 말씀’을 들먹거리는 게 아주 자연스럽다.

논어에 나오는 이 말은 ‘세 사람이 길을 가면 반드시 그중에 스승이 있다’는 뜻이다. 중국인들은 이 석 삼(三)을 ‘3’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여러 사람’쯤으로 해석한다는 것도 여기 와서 들었다.

베이징 올림픽을 취재하면서 ‘삼인행’을 떠올린 것은 ‘나에게는 지금 만 명이 넘는 스승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루하루가 환희요 감동이지만 순간순간이 모두 배움의 현장이다. 4년을 열심히 준비해 올림픽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 선수들은 모두 선생님이다.

올림픽 최초의 8관왕을 노리는 미국의 수영천재 마이클 펠프스. 출전한 종목마다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금메달을 하나씩 추가하고 있다. 벌써 6관왕이다. 이제 2개가 남았을 뿐이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400m 계영이었다. 4명이 100m씩 번갈아 가며 뛰는 이 종목은 나 혼자 잘한다고 금메달을 딸 수 없다. 미국팀은 10m를 남겨 놓았을 때까지도 호주팀에 뒤지고 있었다. 그 마지막 10m에서 레작 선수가 무서운 스퍼트로 극적인 뒤집기에 성공했을 때 첫 번째 영자였던 펠프스는 수영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다.

언론들이 ‘1분간의 포효’라고 표현할 정도로 오랫동안 그의 환호는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동료인 레작 선수가 얼마나 고마웠을까. 펠프스가 포효하는 모습을 보면서 ‘함께 어울려 산다는 것’의 의미를 떠올렸다.

 자유형 400m 금메달에 이어 200m에서 은메달을 딴 박태환. 대한민국의 수영 역사를 한꺼번에 바꿔놓은 엄청난 일을 해냈다.

그런데 이 천진난만한 표정의 열아홉 살짜리 대학 1년생에게서 ‘겸손’을 배운다. “펠프스와 경쟁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그의 말에는 세계 최고에 대한 경의와 겸손이 배어 나온다. 자기도 금메달리스트이면서.

한국 여자양궁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놓쳤다. 한국은 유도 최민호, 사격 진종오 등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선수들이 금메달을 따주면서 개막 이후 5일 연속 금메달 행진을 했다.

여자양궁은 가장 확실한 금메달이라고 믿었기에 충격이 더 컸다. 역시 정상을 지키기는 어렵다는 것, 그리고 내가 잘해도 남이 더 잘하면 어쩔 수 없다는 ‘뻔한 사실’도 다시 한번 배운다. 중국의 장쥐안쥐안이 그렇게 잘하리라고 누가 예상을 했을까. 중국 관중의 방해를 탓하지 않고 ‘내 탓이오’라고 말한 박성현이 중국 선수를 축하하는 모습에서 진정한 페어플레이 정신과 스포츠맨십을 배웠다.

역도 남자 69㎏급의 이배영은 전 세계에 진한 감동을 선사했다. 용상 1차시기 때 발에 쥐가 났으나 종아리를 바늘로 십여 차례나 찌르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고통에 얼굴이 일그러져 쓰러지면서도 바벨을 놓지 않은 그의 투혼에 중국 관중도 기립박수를 보냈다. “최선을 다했기에 꼴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응원을 해준 중국 팬들에게도 감사하다”는 그의 말에서 ‘성숙함’을 배운다.

폴란드 여자 탁구선수 나탈리아 파르티카는 태어날 때부터 오른쪽 팔꿈치 아래가 없었다. 그러나 장애인 올림픽이 아니라 베이징 올림픽에 당당히 출전해 기량을 겨뤘다. 홍콩과의 단체전에서 세계랭킹 10위 티에야나에게 2대3으로 역전패했으나 팔꿈치 끝부분을 살짝 구부려 공을 던지고 왼손으로 서브를 넣는 그의 모습에서 또 하나의 ‘인간 승리’를 배운다.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84㎏급 동메달리스트인 스웨덴의 아라 아브라하미안. 그는 보여줘서는 안 될 추태를 보였다. 시상대에서 메달을 던지고 나가버린 것이다. 준결승에서 심판 판정이 불공정했다는 항의의 표시였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메달은 스스로 버린 그의 인격이었다. 양궁장이나 역도장에서 보여준 중국 관중의 추태도 훌륭한 반면교사다. 결정적인 순간에 소리를 지르거나 호루라기를 부는 몰염치는 ‘나 하나의 행동이 전체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가’를 보여주는 사례다.

올림픽이 아직도 일주일이나 남았다. 또 얼마나 많은 선수가 얼마나 많은 가르침을 줄지. 마무리도 공자님 말씀으로 해야겠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손장환 기획취재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