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굿바이 AFKN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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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한국 주둔 미군방송 네트워크 AFKN.이 알파벳 네 글자는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교육의 교재명이 되어왔다.이제 이「채널2」가 극초단파 UHF34로 바뀌었다.미군 방송이 물론 중단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 방송은 상당수의 한국인 시청자를 잃게 될 것이다.
유선방송이 확장됨으로써 AFKN의 역할이 줄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오랫동안 유일하게 영어다운 영어를 들려주던 이 어학교육 제공처가 모양새를 바꾼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주는 감회는 크다. 민족주의적 차원에서 데모학생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된 적도 있었다.또 나라 자존심 운운하며 빠른 환수를 주장하는 젊은 기자들의 칼럼도 종종 있었다.외국 군대가 주요한 방송주파수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문화식 민주의론」을 주장하는 데는 이론적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이제 우리나라는 「코리아 채널」「월드채널」같은 영어방송이 겨우 계획 단계에 와있는 상황이다.이제 막 출범하는 국제방송교류재단의 이찬용 이사장은 『이 시점에 AFKN 채널2가 없어지는 아쉬움은 곧 더 나은 방향으로 보상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한국인들이 만드는 영어프로그램이 우리문화,우리 경제를 방송할 뿐 아니라 미국의 뉴스 프로그램이나 좋은 다큐멘터리도 큰 지장이 없으면 돈주고 사서 넣겠다는 포부다.이제 정보통신혁명은 이미 우리생활속에 들어와 있 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무튼 그동안 쉽게 볼 수 있었던 「채널2」의 AFKN이 우리 영어교육과 세계화에 준 공로는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넘어가자.
중앙일보의 몇몇 동료들에게 물어봤다.
정형모(31):대학생때 영화 많이 봤습니다.시청각 교재로 사용했습니다.
박준영(50):미국에서 살다온 우리집 아이들은 아직도 토론 프로그램,뉴스 등 이 방송을 듣고 있습니다.
유승삼(53):스포츠중계 시청률이 높았지요.우리가 보도 통제하던 암울했던 시절 그것을 통해 뉴스가 전해질 때도 있었습니다.미국 문화 이해에 도움이 된 것이 사실이지요.밖의 세상을 바로 보는 일종의 창구역할을 한 것도 인정해야 합니 다.
김혜경(22):저는「엔터테인먼트 투나잇」「제너럴 호스피털」「가이딩 라이트」등을 봤습니다.
김영희(60):이 방송이 만약 없어진다면 퍽 섭섭할 겁니다.
이제 우리가 이 주파수의 주인자리를 되찾고 이 때문에 군사정보용으로 사용돼 안보가 튼튼해진다는데는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그러나 우리나라는 아직 일본 수준의 자체 영어방송프로그램이 없는 상황이다.원래 이 방송의 시청대상은 물 론 서울 주위에 있는 미군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지만 밤늦게,그리고 이른 새벽에 이 방송을 즐겨보던 많은 한국인 시청자들에겐 한 조그만시대의 종말을 보는 느낌이 들 것이다.
요사이는 ABC 피터 제닝스의 뉴스,테드 카플의 나이트라인,그리고 NBC의 톰 부로코의 뉴스가 동시방영됨으로써 신속성이 있지만(물론 밤과 낮시간을 거꾸로 이야기하는 것이 이색적이다)60년대만 해도 그런 신속성은 없었다.
흑백 AFKN 텔레비전 시절의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마지막으로이야기해보고 「굿바이 채널2」를 말해보자.서부극 4부자 이야기『보난자』시리즈와 30년대 경제공황기의 시카고갱단과 싸우던 형사물 『언터처블』연속단막극은 잊을 수가 없다.
알 카포네 갱단과 싸우는 엘리엇 네스의 특별경찰대팀이 왜 재무부 소속인가 하는 것은 그후 시간이 많이 흐른 다음 유학을 가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강력범은 결국 세법으로 다스려 탈세범으로 감옥으로 보내는 미국의 특수사정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던것이다. 굿바이 AFKN.
이제 우리가 만드는 뉴스와 연예물이 빨리 영어로 나와 전세계로 나가는 시기를 기대해보자.
(본사 전문위원) 안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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