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납치’ 재조사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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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외무성은 13일 북한·일본 간 국교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북한의 일본인 납치 문제를 가을까지 재조사하기로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양국이 중국 선양(瀋陽)에서 이틀간 진행한 국교 정상화 실무회의에서 북한은 조사 권한을 위임받은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를 설치, 전면 재조사를 신속하게 하자는 일본 요구를 수용했다. 또 조사 진척 상황 등을 일본에 수시로 통보하고 생존자가 발견되면 일본에 알려 필요한 조치를 협의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일본이 조사 진전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관계자 면담이나 자료 공유, 관계 장소 방문 등을 요구할 경우 적극 협력키로 했다. 일본은 재조사가 시작되면 대북 제재 조치의 일부를 해제하고 북·일 간 인적 왕래와 북한 항공 전세기의 일본 입국 등을 허용하기로 했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과 일본이 협상을 통해 적극적인 진전을 이뤄낸 것을 환영한다”며 “양국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고 관계가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6자 회담 발목 눈총 벗기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노린 성의

뉴스분석 양국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재조사키로 전격 합의한 것은 서로 절박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는 “북핵과 미사일 위협, 납치자 문제를 재임 중 해결하겠다”고 강조해 왔다. 그러나 일본은 납치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을 지원하겠다고 주장하면서 6자회담의 발목을 잡는다는 눈총을 받아 왔다.

후쿠다 정부로선 이런 부담을 덜고 납치 문제에 대한 자민당 내 강경 여론도 해결해야 하기 때문에 대화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미국이 추진 중인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절실하기 때문에 최대한 성의를 보인다는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일본이 ‘피랍자 생환’이란 너무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있어 합의가 순조롭게 이행될지는 미지수다. 아사히(朝日)신문은 “일 정부가 상당한 진전이라고 평가했지만 피랍자를 발견해서 귀국시킬 수 있을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북한의 송일호 국교 정상화 교섭대사는 “이번 합의가 이행되지 않으면 북한도 필요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재조사를 받아들이긴 하지만 일본이 희망하는 결과를 보장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사이키 아키다카(齊木昭隆) 일본 아태국장은 “서로 해야 할 일을 해야 약속이 지켜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이 납득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으라는 압박용 발언이다.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북·일 교섭의 최종 목표인 국교 정상화도 낙관하기 어렵다.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시즈오카대 교수는 “납치자 조사 결과는 예단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국교 정상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전망했다.

그 밖에 일제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과거사 청산 문제도 넘기 어려운 산이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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