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릭스’ 주춤하자 미국 펀드 부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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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1경8719조원 vs 200억원’.

전자는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와 나스닥에 상장된 기업의 6월 말 현재 시가총액이다. 18조165억 달러에 달한다. 후자는 국내 해외 펀드(60조원) 가운데 미국 시장에 투자하는 펀드의 설정액이다. 문자 그대로 ‘새 발의 피’ 수준 규모다.

반면 상하이증권거래소와 홍콩거래소의 시총은 총 4조2023억 달러(약 4366조원)다. 미국 증시 규모의 4분의 1가량이다. 그러나 국내 투자자는 중국·친디아·브릭스 펀드 등을 통해 30조원이 웃도는 돈을 중국 시장에 쏟아 부었다. 미국 펀드 규모의 1500배에 달한다.

해외 펀드의 자산 배분 불균형이 심각한 셈이다. 지난해 4분기 이후부터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증시가 급락하면서 ‘쏠림’의 부작용에 대한 경계 심리가 거세졌다. 여기에 최근 달러화가 강세를 나타내면서 신흥국 펀드보다 선진국 펀드, 특히 미국 펀드에 관심을 가질 때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안전자산 선호=유로화에 대한 달러 환율은 한 달 전만 해도 1.6달러를 웃돌았다. 그러나 최근엔 1.5달러 밑으로 내려왔다. 2002년 이후 지속된 달러 약세가 막을 내릴 것이라는 전망이 힘을 받는다.

달러 강세로의 전환은 세계 금융시장의 돈 흐름이 바뀌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 달러 약세는 신흥시장과 상품시장에 돈이 몰리게 만들면서 이들 자산의 가격을 치솟게 했다. 이제 달러가 강세로 전환되자 돈은 다시 달러 자산으로 회귀할 태세다. SK증권 김준기 연구원은 “달러 자산에 대한 선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며 “신흥국보다는 미국 증시에 대한 투자 비중을 확대할 때”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13일 블룸버그통신은 글로벌 자금이 올 들어 처음으로 브릭스 증시에서 빠져 미국 증시로 이동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브릭스 4개국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잇따라 금리를 인상하고 있는 반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경기 부양에 무게를 두면서 금리를 동결시키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다만 낙관하기엔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달러 강세가 지속되면 미국 수출 업체와 다국적 기업의 이익이 줄어든다. 실적 둔화는 주가의 최대 적이다. 또 때때로 터지는 금융위기 여파는 증시 상승의 발목을 잡는다.

◇자산 배분 고려해야=향후 미국 시장에 대한 전망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자산 배분 차원에서 미국 펀드에 관심을 가질 만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견해다. 하나대투증권 손명철 연구원은 “과거와 같이 신흥국 중심의 투자보다는 선진국에 대한 적절한 투자 비중 조절이 필요하다”며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작은 미국 및 글로벌 펀드에 투자할 만하다”고 말했다.

현재 미래에셋·신한BNPP·피델리티자산운용 등이 미국 펀드를 출시했지만 총 설정액은 200억원에도 못 미칠 정도로 규모가 미미하다. 최근 1년 수익률은 평균 -8%로 원금을 까먹고 있지만 다른 신흥국 펀드에 비해선 양호한 편이다. 최근 1개월 수익률은 4%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달러 강세를 확신한다면 환헤지를 하지 않는 게 낫다. 수익률에 환차익까지 보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 설정된 대부분의 미국 펀드는 모두 환헤지 상품이다. 삼성투신운용 양승익 과장은 “향후 미국 증시에 투자하는 상장지수펀드(ETF)가 출시되면 환차익을 겨냥한 투자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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