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팝 다이어리] 세련된 아날로그 벨 앤 세바스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5면

봄이 무르익으니 꽃과 바람을 찾아 이곳저곳 떠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때마침 연인이 곁에 있다면 신록의 푸르름은 더욱 깊고, 산들바람 소리도 더 청량하리라. 불행히 연인이 없다 해도 걱정할 일은 아니다. 종종 어떤 속깊은 친구보다 우리를 더 위로하고 기쁘게 하는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8명으로 구성된 영국 출신 밴드 벨 앤 세바스천(Belle & Sebastian)의 새앨범 'Dear Catastrophe Waitress'가 바로 그렇다.

벨 앤 세바스천은 1995년 영국 스코틀랜드 지방의 작은 소도시 글래스고에서 결성된 팀이다. 보컬과 기타를 맡고 있는 스튜어트 머독을 중심으로 모두 7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앨범 2장만 내고 해체하자'는 소박한 목표로 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었던 두 번째 앨범 'If You Are Feeling Sinister'가 큰 성공을 거두며 그런 순박한 목표는 그저 후일담이 되었다. 바다 건너 한국에서도 벨 앤 세바스천은 폭넓은 애호가들을 만들었다. 일상적이면서도 재치 넘치는 노랫말을 수줍은 듯 감칠나게 부르는 보컬. 포크를 기반으로 유려하게 곁들여진 바이올린과 트럼펫의 조합은 스피커 주변에 훈기를 더했으며 듣는 이의 심장을 촉촉하게 감쌌다. 어떤 음악을 듣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취향을 분석할 수 있다면, 벨 앤 세바스천은 그 잣대의 하나였다. "어떤 음악 좋아해?"에 "벨 앤 세바스천"이라 답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취향을 알릴 수 있다는 말이다.

이전까지의 앨범이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초봄에 듣기 적합했다면 새 앨범은 충분히 늦봄의 배경음악이 될만하다. 소박한 멜로디를 따뜻한 사운드에 얹기는 마찬가지지만 그 농도와 표현 방식이 여태까지와는 사뭇 다르기 때문이다. 리듬은 힘을 얻어 쾌활해졌고 변성기 없이 성장했을 것 같은 스튜어트 머독의 목소리에는 자신감까지 붙었다. 게다가 이들의 음악에 아름다움을 더해 온 각종 스트링과 브라스에는 멤버들뿐 아니라 오케스트라급의 인원이 참여해 풍성함을 선사했다.

이 음반을 듣는다면 해외 음악 저널들이 '벨 앤 세바스천 최고의 앨범'이라고 내린 평가에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음악은 MP3파일보다는 음반으로 들어야 제 맛일 게다. 좀더 욕심을 부려 자글자글 끓는 LP로 들을 수 있다면 더 좋겠다. 아무리 디지털 시대일지라도 때때로 아날로그의 느낌이 그립지 않던가. 물론 이 경우 동시대성을 잃게되면 잘해야 복고요, 못하면 촌티로 흐를 위험은 있다. 아날로그적이면서도 세련미와 따뜻함을 무심하게 이끌어내는 '8명의 남녀들'. 그들이 바로 벨 앤 세바스천이다.

김작가 음악 칼럼니스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