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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인터뷰>페리 앤더슨 "뉴레프트 리뷰"편집위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3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진보적 학술지 뉴레프트 리뷰의 편집위원이자서구 진보적 지성의 대표격인 페리 앤더슨(58)이 『창작과 비평』창간 3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25~26일.서울대)에 참가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1938년 영국 런던 태생으로 옥스퍼드대를 나와 25세때인 63년부터 82년까지 뉴레프트 리뷰 편집주간을 지낸 그는 현재이탈리아 유럽대학에서 강의도 하고 있다.
『고대에서 봉건제로의 이행』(창비刊),『절대주의 국가의 계보』(창비刊),『역사 유물론의 재구성』(인간사랑刊)등으로 국내 학계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는 인물.그와의 인터뷰는 아주 이상하게 진행됐다.모든 인터뷰를 『학술지 편집위원으로서 인터뷰하는게나의 임무』라는 이유로 응하지 않았기 때문.사생활 침해라는 이유로 사진 찍기도 사절했다.사진기를 들이댈 때마다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창작과 비평』의 도움으로 이틀간에 걸쳐 짬짬이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했다.참으로 궁색한 「강제 인터뷰」였다.
주변의 말대로『그는 여태껏 일간지와 인터뷰한 적이 없다』는게 사실이라면 결과적으로 이 인터뷰는 세계 최초가 될 것이다.
-사회주의 붕괴이후 뉴레프트 리뷰의 관심과 경향은 어디에 모아지고 있습니까.
『창간된지 35년이 지난 뉴레프트 리뷰는 현재 세계적으로 정기구독만 약 1만부가 됩니다만 실제로 이 책을 읽는 사람은 그것의 몇배가 될 것입니다.최근 경향은 사회주의 붕괴 이후 그 실패를 반성하고 문화의 역할과 새로운 민주적 가치 를 발견하는데 모아지고 있습니다.또 사회주의 붕괴로 유럽의 사민주의가 더욱 활성화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예측이었습니다.이런 예상과 달리 유럽의 좌파는 더욱 약화되었습니다.이런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도 중요한 이론적 관심중의 하 나입니다.올 가을호엔 특집으로 사회주의 붕괴로 감춰져 있는 70년대 이후 대량실업.
성장률 하락 등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구조적 문제들을 다룰 예정입니다.』 -문화와 새로운 민주적 가치에대해선 요즘 미래학자들도 관심을 표시하고 있습니다.이들과 어떻게 구별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란 문명간의 충돌을 상정하고 군사적 긴장을 늦추지 않는 경보장치(헌팅턴),혹은 치열한 경제적 경쟁에 봉사하는 장치(후쿠야마)를 의미합니다.최근 이들의 관심은 문화적 이질성을 제거해 이데올로기적으로 통합시 켜 자본주의헤게모니에 봉사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최근 동아시아 문화에대한 관심이 높습니다.이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겠습니까.
『18세기 이래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관심이 이처럼 큰 적이없었습니다.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이런 관심 속에 중요한 세계정치적 의미가 있다는 점입니다.그들의 관심은 힘의 균형을 변형시키는 동아시아의 부상에 대한 유럽의 반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논문에서 「문화」를 진보적 공간으로 상정하고 있는데 그것은 어떻게 가능합니까.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포함한 자유주의자들은 문화를 「지구적」인 것의 극적인 표현으로 사용했습니다.문화를 자본주의 통합의 기제로서 우파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문화는 본래 「지구적」이기보다 「민족적」입니다.이에 합당한 의미를 획득할 때 전지구적으로 가속화되는 자본주의적 통합에 비판적인 지렛대가 될 수 있습니다.이런 점에서 뉴레프트 리뷰지도 한국의 통일문제나 여성문제 같이 제3세계의 문화적 가능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새로운 형태의 문화적 혁신과 정치적 저항은 주변부에서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21세기를 전망하면서 문화의 이런 가능성을 찾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민족문화 지역연대 역설 『문화가 구체적 힘을 갖기 위해선 민족의 삶과 견고하게 결합돼야 합니다.민족의 삶과 유리된 문화는 전지구적 통합 움직임에 효율적으로 저항하는 활력제가 될수 없습니다.거기에 이것만으론 인공위성과 같은 통신수단을 사용하는 다국적 자 본에 성공적으로 대항할 수 없습니다.이들 민족문화들 사이의 「지역적 연대」가 필요합니다.이를 통해 세계적 수준에서의 일방적인 자본주의적 통합을 제어해낼 수 있을 것입니다.』 ***게으른 한국知性 질타도 시종 진지하고 냉정한 모습을 견지한 그는 답변 도중 틈만 나면 「한국 지성계의 현주소」에 대해 질문을 아끼지 않았다.그는 일반적 사례와 달리 한국의정치권력이 산업화 과정을 통해 형성된 게 아니라 반대로 전근대적 지역성을 기반으로 만들어져 근대화를 이룬 점에 대해 매우 궁금해했다.
20세기 후반에 전근대적 지역주의와 근대화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 그는 이에 대한 한국 지성의 적절한 연구가 없는 점도 이해할 수 없다며 그 게으름을 꼬집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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