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불교계 반발 겸허하게 수용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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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불교계가 27일 서울광장에서 ‘헌법 파괴, 종교 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를 열기로 했다. 조계종뿐 아니라 천태종·태고종 등도 함께할 예정이어서 불교계 역대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불교계의 반발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지난 6월 국토해양부가 만든 교통정보시스템인 ‘알고가’에 교회 정보는 포함된 반면 사찰 정보는 누락된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달 전국경찰복음화금식대성회 홍보 포스터에 어청수 경찰청장의 얼굴 사진이 조용기 여의도순복음교회 목사와 나란히 실렸다. 지난달엔 조계사 입구에서 경찰이 촛불집회 수배자를 색출한다고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승용차 안과 트렁크까지 뒤졌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운영하는 인터넷 사이트 ‘교육지리정보시스템’에 교회와 성당은 들어있는데 사찰은 빠진 사실이 최근에 드러났다. 게다가 같은 날 불교닷컴에 따르면 국토해양부가 운영하고 있는 국가지리정보유통망(www.ngic.go.kr)에서도 사찰을 홀대한 것으로 확인됐다. 교회는 지도를 3단계 확대하면 나오지만 사찰은 7단계를 확대해야 나타난다.

지금의 사태는 기독교 장로 신분인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만 해결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직 시절에는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빚은 바 있다. 대통령 취임 후에는 이를 거울삼아 조심하고 경계했어야 옳다. ‘알고가’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일이 문제됐을 때 대통령이 나서서 공직자들의 종교편향적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하면 징계하겠다는 담화나 지시를 내렸다면 이후의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대통령이 나서서 공직자와 불교계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불교계와 함께 종교 편향 방지 대책을 협의토록 해야 한다. 그것이 아랫사람들의 과잉 충성이나 과잉 소신, 거듭되는 실수를 막는 실질적인 방법이다. 한국은 불교·개신교·천주교 3대 종교와 여러 소수 종교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세계에 드문 나라다. 종교 간 불화와 반목의 불씨는 일찍 끌수록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