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북한.미국접촉 양해 기준" 마련 의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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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마련중인 「북.미 접촉 양해기준」은 북.미 관계개선 문제에 대한 정부 접근방식의 근본적 발상전환을 의미한다.
북.미간 접촉및 대화 의제와 관련,『이러 이러한 것은 논의해도 되지만 나머지는 안된다』는 기존의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이러 이러한 것만 빼고 나머지는 다 된다』는 「네거티브 시스템」으로의 노선변경을 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북.미간 접촉에서 논의될 수 있는 다양한 의제에 대한 「범주화(Categorize)」작업을 벌이고 있는것으로 알려지고 있다.한국의 국익이나 주권과 직결되기 때문에 한국을 배제한 북.미간 직접대화를 절대 허용할 수 없는 범주를크게 세가지로 설정,각 범주에 들어갈 수 있는 사항을 정리하고있다는 것이다.
이들 특정사항에 대해서는 한국의 참여와 개입이 보장돼야 하지만 나머지 사안에 대해서는 북.미간의 광범위한 대화와 접촉을 용인한다는 의미에서 네거티브 방식이며,이는 북.미 접촉에 대한사실상의 대폭적 「규제완화」를 의미한다.
정부는 ▶한반도의 현상변경▶한반도의 장래▶한반도의 평화와 안전등 세가지 카테고리를 우리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기준으로 설정하고,기준별 해당사항을 정리하고 있다.
이 기준에 비추어 현재 북.미간에 진행중인 미사일수출통제협상이나 유해송환협상.연락사무소 개설등은 우리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며 경제제재 해제 문제도 원칙적으로 이 기준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정부측 판단이다.
다만 경제제재 해제의 경우 그 효과가 북한의 군비증강으로 이어질 것을 경계,해제가능한 조치를 효과별로 3~4단계로 분류하고 있다.그리고 단계별 조치를 북한의 체제변화와 남북대화를 유도하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고 정부는 보고 있 다.이런 점에서 남북관계 진전과 북.미관계 개선을 맞물리는 기존의 「조화와 병행의 원칙」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 당국자의 설명이다.
정부가 「북.미접촉 양해기준」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북.미간접촉에 더이상 제동을 걸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이 우선적으로 작용하고 있다.최근들어 북한과 미국간의 각종 공식.비공식 접촉과 대화가 봇물터지듯 이어지고 있으며,이미 우리 의 통제권을 벗어난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따라서 실현가능성을 고려한 현실주의적 접근방식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또 북.미 관계개선이 반드시 국익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대국적」 판단도 중요한 배경으로 지적되고 있다.
예컨대 연락사무소 개설은 북한의 내부실상 파악에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이 기회에 북.미 접촉에 대한 확실한 개입원칙을 제시함으로써 더이상 여론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계산도 작용하고 있다.그간의 무정견한 대북정책 수행에는 정부의 책임이 크지만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여론에서 비롯한 측면도 적 지 않다는 것이다.
배명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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