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로스오버여행>아메리카-킹스 싱어스/EMI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3면

「사람의 목소리로 빚은 가장 아름다운 앙상블」.바로 영국의 「킹스 싱어스」를 가리키는 말이다.90년대 초반에 들어서야 비로소 우리에게 친근한 이름이 된 이 여섯사내의 진가는 두말할 나위없이 무반주 중창곡,그러니까 「아카펠라」에 있 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아무런 반주없이 두명의 카운터테너와 두명의 바리톤,한명의 테너와 베이스로 직조하는 노래의 결은,그것이 마드리갈이나 성가곡,폴 사이먼의 팝송 할 것없이 우아하고 부드럽다.어쩌면 맨해튼트랜스퍼로부터 시작해 보이즈 투 멘이나 올 포 원에 이르는 대중음악 아카펠라의 영역도 킹스 싱어스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날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킹스 싱어스는 88년에 발표된 이 앨범에서 예측을 불허하는 구도를 보인다.포퓰러 클래식의 거장인 칼 데이비스가 이끄는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협연자로 나선 것.『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를 여는 이들의 서늘한 반주는 또 그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다.오케스트라는 휘황한 광채를 발하다가도 쓸데없이 두드러지지 않고 숨을 죽이는 지혜를 발휘하기도 한다.10곡의 대표적인 팝음악 모두 훌륭하지만 편곡을 맡은 데이비드 클렌은 특히 돈 매클린의 『빈센트』에선 화가 반 고흐의 강렬한 이미지가 생생하게 살아난다고 자신있게 말한다.이들은 92년 『굿 바이브레이션』이란 또 한편의 아메리칸 팝스앨범을 발표했다.
킹스 싱어스야말로 험한 세상에서 또 다른 세상으로 저어가는 음악의 조타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음반평론가> 서동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