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진혁 칼럼

'過半의 힘'이 해야 할 답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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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원래 힘은 중립이다. 힘 그 자체가 가치는 아니다. 힘을 좋은 데 쓰면 가치가 되고, 나쁜 데 쓰면 악이 되고 독이 된다. 힘 력(力)자가 들어가는 금력(金力).권력.무력이 다 그렇다. 돈이 많을수록 좋다고 하지만 유익하게 쓰지 못하고 주색잡기에 탕진한다면 자기를 죽이는 독약이 될 뿐이다. 무력도 평화를 지키는 데 쓴다면 가치가 있지만, 강도나 테러 집단이 가지면 재앙이 된다.

*** 국정 방향 나와야 새 질서 잡혀

권력도 마찬가지다. 권력을 잡았다가 망한 사람이 역사에 얼마나 많은가. 권력은 쓰기에 따라 명군(名君).명재상이 되기도 하고 폭군.암군(暗君)이 되기도 한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마침내 국회의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국회 의석도 권력이다. 잘 쓰면 가치가 되고, 못 쓰면 재앙이 되기는 마찬가지다. 야당이 다수 의석을 잘못 사용해 탄핵 결의를 강행했다가 호되게 당한 것이 좋은 예다.

盧정권도 이제 과반 의석이란 새로 얻은 '힘'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질문에 답을 내놓을 차례가 됐다. 총선 개표가 끝나자마자 사람들은 주시하고 있다. 신생 권력이 어디로 가는지, 무슨 일을 하려는지 숨죽이고 보고 있다. "상생정치를 하겠다" "민생 살리기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이 여당 간부의 입에서 자주 나온다. 그러나 그런 선거구호 같은 말 정도로는 부족하다. 정말 집권 세력의 진정(眞情)과 체중이 실린 큰틀의 국정 방향이 빨리 제시돼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이 대비할 수 있다. 거기에 맞춰 투자할 사람은 투자하고, 사업 방향을 틀 사람은 틀 수 있게 된다. 또 집권당의 국정 방향을 중심으로 사회에 다시 찬.반의 공론(公論)이 형성되고, 정치권의 토론이 재개됨으로써 총선 후 사회가 새로운 정상화의 질서에 들어갈 수 있게 된다.

이번 경우 특히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진보 세력이 의회를 장악했다는 점에서 그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총선 직후 권한대행 정부는 재빠르게 "정부 정책에 급격한 좌회전은 없을 것"이라고 천명하고, 외교.경제정책에도 변화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국민은 이미 권력이 대행정부에 있지 않음을 안다. 그런 발표가 신생 권력과의 협의를 거쳐 나온 것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정부 쪽보다는 직무가 정지돼 있는 청와대에 새삼 눈길을 보내고 새 여당의 기류를 살핀다. 선거 직후부터 나온 남북 국회회담.파병 재검토 같은 새 쟁점을 더 주시하고, 국방비를 반으로 줄여 학교 급식비로 돌리자는 어떤 당선자의 발언 같은 데서 뭔가 힌트를 찾으려 한다. 경제부총리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계속 추진한다고 말했지만 한 TV의 설문조사에서는 여당 당선자의 62%가 성장보다는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응답했다. 대행정부는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을 맞아 외교정책에 변화가 없다고 했지만 한 신문의 조사에서 초선의원 55%가 가장 중시해야 할 나라로 중국을 꼽았다. 그렇다면 국민은 부총리의 말과 여당 당선자의 성향에서, 또는 우리 외교의 앞날에 대해 헷갈리지 않을 수 있을까. 외국 언론들도 한국 정치가 왼쪽으로 선회했다고 분석하면서 한.미 관계와 남북 관계의 변화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이처럼 총선 후 여러 분야에서 기존의 국정 방향은 흔들리는 대신 새 방향 제시는 없는 데서 불확실성.불안정성이 조성되고 있다. 현명하고 능숙한 리더십이라면 이런 모호한 기간을 결코 오래 끌지 않을 것이다. 국민을 안심시키고 정부에 대한 예측성을 높이자면 새로 얻은 그 '힘'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어디로 갈 것인지 큰 틀의 방향 제시를 빨리 해야 하는 것이다.

*** '누구는 손본다' 風說 왜 나오나

지금 많은 사람들은 물어보고 싶다. 그대들은 더 좌(左)로 갈 것인가, 우(右)로 갈 것인가. 일자리 만들기.경제 살리기가 최우선이란 말은 계속 유효한가. 이른바 수구꼴통 반대세력에 대해선 보복인가, 공존인가. 법치와 대중주의 사이에 분명한 선을 그을 것인가, 아닌가. 코드인가, 실용주의인가…. 이런 여러 질문에 어떤 형태로든 답이 빨리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러잖아도 지금 여러 풍설이 돌고 있다. 누구는 조지고 누구는 손본다더라 하는 따위의 얘기가 파다하다. 새로 얻은 과반의 힘을 좋은 데 가치있게 쓰겠다는 신호가 빨리 나와야 그런 풍설도 사라질 것이다.

송진혁 논설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