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탕약은 사라지고 알약 ·젤리형 한약 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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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캡슐로 된 한방 변비약, 어린이용 보약 젤리, 코막힘을 뚫어주는 사탕, 물 없이 먹는 소화제…’. 이런 한약 보셨습니까.

종래 탕약 또는 환약 일색이었던 한약이 옷을 갈아입고 있다. 먹기 좋고, 휴대하기 편하면서 신속한 효과를 보이는 제형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것. 그 중심에 류봉하 신임 경희대 한방병원장(소화기내과·사진)이 있다. 2006년 한방병원 내에 한약물 연구소를 만들어 이미 10여 종의 제형을 개발하고, 제약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침체된 한의학이 국민에게 사랑받기 위해선 한약의 제형 개발이 우선입니다. 탕약을 택배 서비스까지 하지만 세대가 바뀌면서 이마저 외면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대표적인 제형 개발은 어린이 감기약. 종래 한방의 방제(처방)인 방풍해독탕을 아이들이 좋아하는 젤리로 만든 것. 불안증이 있거나 예민한 아이들을 안정시키는 한약 역시 젤리다. 한방 변비약도 있다. 대승기탕에서 대장을 자극하는 대황·망초 등 성분을 뽑아 캡슐화했다. 취침 전 한 알을 먹고 자면 아침이면 여지 없이 변의를 느낀다는 것이다.

원기를 회복하고, 피로를 풀어주는 생맥산도 과립제로 만들었다. 이 연구소 최혁재 상임연구원은 “피로 물질인 젖산 농도뿐 아니라 요소·크레아틴 수치가 떨어진다”며 “실험에서 납을 매단 보통 쥐는 물에서 5분간 버둥대다 늘어졌지만 과립 생맥산을 먹은 쥐는 13분간 헤엄쳤다”고 말했다.

암환자를 위한 젤리도 개발했다. 보기(補氣, 기를 보함) 효과가 있는 황기에 프로폴리스를 첨가해 면역력을 높여준다.

새로운 제형의 한약도 줄지어 서 있다. 자하거(태반)를 활용한 항노화방지 화장품은 시제품이 나왔고, 캡슐로 된 비만개선제는 8월 중, 갱년기 여성을 위한 수면보조제는 다음달 임상을 거칠 예정이다.

하지만 한약의 변신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양을 줄이면서 약효를 유지하고, 맛을 내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

문제는 앞으로도 산적해 있다. 대학병원이 제약회사를 가지고 있지 않아 개발한 약을 다른 한의원이나 일반인에겐 팔 수 없다. 따라서 현재는 병원을 찾아온 환자에게만 제공된다는 것. 여기에 약품으로 허가받기 위한 독성 및 임상시험을 거치려면 몇 년의 기간이 소요된다.

“중국은 한약의 70%, 일본은 모든 한약을 과립제로 만들고 있습니다. 일본의 쓰무라제약 과립제는 우리나라에 20억원 정도 수출까지 하고 있죠.” 류 원장은 “탕제는 길어야 10년 이내 사라질 것”이라며 “임기 내 국내 한방의 제형 기술을 한 단계 높이고, 일반인에게도 공급하는 제약화 시설을 갖추는 것이 목표”라고 덧붙였다.

고종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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