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中年>4.요리연구가 최경숙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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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요즘 중산층 주부들 사이에는 「요리과외」가 유행이다.요리를 잘하는 선생님댁 주방에 7~8명의 학생이 모여 1주일에 한두가지씩 가정요리를 공부하는 새로운 생활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
요리연구가 최경숙(崔敬淑.46.라맘마 꾸시나 원장)씨는 이같은 요리배우기 열풍을 수년전부터 소리없이 전파시킨 주인공으로 꼽힌다. 『남편을 따라 도쿄(東京)생활 3년을 마치고 돌아와 몇번 집들이를 했어요.그런데 한번 와서 먹어본 주부들이 만드는법을 가르쳐 달라고 조르는 거예요.어떻게 해요,팔자에 없는 요리 선생님이 됐지요.』 80년대 초반 요리배우기가 붐이던 도쿄의 상류층 부인들틈에 유일한 한국인으로 끼어 배워온 그의 고급스런 가정요리는 지금까지 내려오던 요리학원식 메뉴와는 전혀 달라 금세 소문이 났다.
「물을 자작하게 붓고 끓인 다음」대신 「생수 반컵을 붓고 강한 불에 3분을 끓인 다음」으로,「간장과 설탕으로 맛을 내고」대신 「간장 1큰술과 설탕 2작은술을 넣고」로 이어지는 그의 조리법은 그대로만 하면 실패할 염려가 없는 정확함 으로 주부들의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재료 구하는 법,계절에 맞는 보관법에다 어떤 그릇에 담고,먹는 매너는 어때야 하는지까지 이른바 요리를 둘러싼생활문화 전반을 가르치는 이는 당시로선 崔씨가 처음이었던 것.
그래도 학원을 낸다든가,요리책을 낸다든가하는 프로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주부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는 보통 주부 요리가로 남고 싶었다.하지만 한번에 8명씩 가르치는 방식으로는 배우겠다고 찾아오는 수많은 주부들을 감당할 길 없고,주변의 부추김도 있어서 93년 집 근처에 「라맘마꾸시나」(엄마는요리중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라는 학원을 차렸다.
「명함없는 방배동 요리선생」생활 10년만의 일이었다.집에 생활비가 없어도 손님을 끌고 오던 호인(好人)남편 덕분에 익힌 손님초대 솜씨가 꿈에도 생각지 않은 요리학원 원장으로 발전한 것. 『요리는 흔히 어머니의 손맛이라고 하지요.손끝에서 맛이 나온다고도 하고요.하지만 요리 재료가 다양해지고 입맛도 국제화된 요즘에 몇가지 요리만을 외워 매일 되풀이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랑과 정성이 담긴 요리」못지않게 「정확한 계량과 과학적인 조리법」을 강조하는 이유를 崔씨는 『시대가 바뀌었다』는 한마디로 설명한다.
지난해 케이크 만드는 법을 책으로 펴낸 후 제2의 요리책은 엄두가 안난다고 말하는 이유도 세월과 함께 조리법 자체가 변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그래서 崔씨는 경력 10여년이 쌓인 지금도 1년에 두번씩 일본.홍콩 등의 유명 요리가들 을 찾아다니며 새로운 조리법을 배우곤 한다.
요리학원 원장이라는 호칭보다 「별 수 없는 가정주부」임을 자처하는 그의 변신은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 성공하는 우리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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