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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우생순Ⅱ’…이번엔 막내가 해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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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04면

한국 여자핸드볼 대표팀의 안정화(17번)가 러시아 안나 카리바(왼쪽), 나탈리 시필로바의 수비를 뚫고 슛을 날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출발이 상쾌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 이튿날인 9일 한국은 유도 남자 최민호가 금, 사격 남자공기권총 10m의 진종오가 은메달을 따내는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다. 여자핸드볼과 여자농구는 한국 아줌마의 억척스러운 생명력을 과시했다. 여자핸드볼은 세계 최강 러시아를 맞아 기적 같은 29-29 무승부를 이뤘고, 여자농구는 숙적 브라질과 연장 접전 끝에 68-62로 승리했다. 한국 수영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노리는 ‘머린 보이’ 박태환은 400m 자유형에서 예선 3위로 10일 열리는 결승에 진출했다.

최민호 유도 금, 진종오 사격 은
남자 유도 60㎏급의 최민호(28)가 한국에 베이징 올림픽 첫 금메달을 선사했다. 최민호는 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오스트리아의 루드비히 파이셔를 맞아 경기 시작 2분14초 만에 한판승을 거두며 생애 첫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민호는 1회전을 부전승으로 통과한 후 4연속 한판승으로 결승까지 올랐다. 2회전에서는 미겔 앙헬 알바라킨(아르헨티나)을 1분16초 만에 업어치기 한판, 3회전에서는 마소드 아콘자데(이란)를 1분18초 만에 한팔업어치기로 물리쳤다.

8강 상대였던 리쇼드 소비로프(우즈베키스탄)는 업어치기로 경기 시작 2분28초 만에 한판으로 눌렀고, 4강에서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자인 루벤 후케스(네덜란드)를 24초 만에 다리잡아메치기 한판으로 꺾었다.

①남자 10m 공기권총 결승전에서 은메달을 차지한 진종오(왼쪽)가 금메달의 중국 팡웨이(가운데), 동메달의 북한 김정수와 시상대에 올라 포즈를 취하고 있다. ② 여자농구 한국-브라질전에서 한국 선수들이 연장전 끝에 68-62로 극적인 승리를 거둔 후 환호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결승전을 포함, 그가 다섯 번 한판승을 거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7분40초. 이로써 최민호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다리에 쥐가 나 8강전에서 무너지고 동메달에 그쳤던 아픈 기억을 씻었다.

1m63㎝의 최민호는 유럽 챔피언이자 자신보다 7㎝가 큰 파이셔를 맞아 조심스러운 출발을 보였다. 4강에서 후케스를 꺾은 모습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하지만 결승전까지의 순항으로 체력을 비축해 놓은 최민호는 기회가 왔을 때 거침이 없었다. 파이셔가 다리 공격을 들어오는 순간 상대의 다리 사이로 왼손을 넣어 그대로 메치며 통쾌한 한판승을 거뒀다. 새로운 한판승의 사나이가 태어난 순간이었다.

최민호는 승리를 확정한 후 안병근 대표팀 감독을 끌어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단상 꼭대기에서 애국가를 들으면서도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2003년 오사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 이후 메이저 대회 첫 금메달이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동메달, 2007년 세계선수권 동메달 등 큰 무대에서 고배를 마셨던 아픈 기억도 사라졌다.

최민호의 금메달로 한국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이후 매 대회 유도 메달을 획득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편 최민호에게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60㎏급 강자 히라오카 히로아키(일본)는 2회전에서 타라헤 윌리엄스-머리에게 덜미를 잡혔다.

한국의 첫 메달은 사격에서 나왔다. 남자 10m 공기권총에 출전한 진종오(29)가 결선 합계 684.5점을 쏴 688.2를 기록한 중국의 팡웨이에 이어 은메달을 따며 두 올림픽 연속 은메달을 거머쥐었다. 동메달은 합계 683점을 쏜 북한의 김정수에게 돌아갔다. 이로써 한국은 올림픽 개막 후 첫날 금1, 은1개를 획득하며 기대 이상의 선전을 했다.

본선에서 584점(600점 만점)을 쏴 팡웨이에게 2점 뒤진 2위로 결선에 오른 진종오는 첫 발에서 9.5점을 기록하며 593.5점으로 팡웨이와의 격차를 1.8점으로 좁혔다. 그러나 팡웨이는 이후 연달아 10점대를 기록하며 리드를 유지했고, 다섯 번째 사격에선 팡웨이가 10.4점, 김정수가 10.3점을 쏘며 9.4점에 그친 진종오는 3위까지 밀려났다.

진종오가 여섯 번째 사격에서 10.2점을 쏘며 2위로 복귀했지만 팡웨이는 10.3점을 기록했고 일곱 번째에 10.7점을 쏘며 진종오에게 3.8점 차로 앞서갔다. 2위 자리마저 위협받던 진종오는 여덟 번 째 사격에서 10.8점을 쏘며 664.8점을 기록, 8.9점에 그친 김정수를 따돌렸다.

진종오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이어 두 대회 연속 값진 은메달을 차지했지만 당시 50m 권총에서 막판 실수로 금메달을 놓쳤던 아쉬움을 달래지는 못했다. 50m 권총 경기는 12일에 열린다.

‘우생순은 끝나지 않았다’
세계 최강 러시아를 다 잡았다 놓쳤다. 그러나 한국 여자핸드볼은 베이징에서도 ‘우생순 2’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한국은 베이징 올림픽스포츠센터 체육관에서 열린 러시아와의 조별리그 B조 첫 경기에서 대표팀 막내둥이 김온아가 7골, 홍정호와 박정희가 각각 5골을 넣으며 맹활약한 데 힘입어 29-29, 극적인 무승부를 만들어냈다.

한국은 지난해를 비롯해 세 번(2007, 2005, 2001년)이나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한 러시아를 맞아 불꽃 같은 투혼을 발휘했다. 이기지는 못했지만 열세를 예상한 경기에서 값진 승점 1을 따내 11일 독일전을 비롯해 스웨덴·브라질·헝가리 등 난적들을 앞두고 자신감을 얻었다. 6개 팀씩 A, B조로 나뉘어 조별리그를 펼치는 이번 대회에서 조 4위 안에 들어야 녹다운 방식으로 열리는 8강에 진출한다.

전반 20분까지만 해도 1~2골 차 리드를 지키던 한국은 골키퍼와 일대일로 맞서는 속공과 페널티스로 기회를 잇따라 놓치면서 13-16으로 역전을 허용했고 후반 6분께는 17-25까지 밀렸다. “이렇게 무너지고 마는가” 싶은 순간 ‘아줌마 부대’로 불리는 대표팀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20세의 김온아가 매서운 투지를 불살랐다.

센터백을 맡고 있는 김온아는 1m67㎝의 단신임에도 불구하고 엘레나 폴레노바(2m·2골) 등 장신들이 버티는 러시아 골문을 겁 없이 파고들며 슛을 날려 페널티스로를 얻어내는 등 한국의 플레이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러자 언니들도 불끈 힘을 냈다. 한국은 후반 17분부터 김차연(2골)과 김온아의 연속 골에 힘입어 25-26, 한 골 차로 따라붙었다.

김온아의 활약은 계속됐다. 김온아는 22분21초에 페널티스로로 동점을 만들었고 경기 종료 3분여를 남기고 27-29로 뒤지던 상황에서 다시 페널티스로를 성공시켜 1골 차로 좁혔다. 러시아가 당황하는 사이 한국은 박정희의 점프슛으로 29-29, 균형을 맞췄고 남은 1분을 골키퍼 오영란이 실점 없이 막아내 소중한 승점을 지켰다.

가장 빛나는 선수가 된 김온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이길 수 있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한국의 임영철 감독은 “이겼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아쉽다. 앞으로도 첩첩산중이다. 지난해 12월 세계선수권에서는 준비를 10일 정도밖에 하지 못했지만 올림픽은 3달여를 준비했다. 그때보다 더 좋은 성적을 올리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편 이명박 대통령은 김윤옥 여사와 경기장을 찾아 한국팀을 응원한 뒤 선수들을 격려했다.

여자농구, 8강 파란불
한국 여자 농구대표팀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4강에 올랐지만 3~4위전에서 브라질에 패해 동메달을 놓쳤다. 이후 한국은 깊은 침체기에 접어들었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전패를 당하며 꼴찌로 전락했다. 브라질에 진 빚을 갚기까지 8년이 지났다. 한국 선수 중 박정은·김영옥·이종애는 이제 ‘아줌마’다.

한국은 베이징 올림픽 농구경기장에서 열린 브라질과의 조별리그 A조 1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최윤아(19점)와 변연하(19점)의 활약으로 68-62로 이겼다. 한국은 이날 승리로 각 조 4위까지 주어지는 8강 토너먼트 진출 티켓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에 올랐다. 호주·러시아·브라질·라트비아·벨로루시와 같은 조에 속한 한국은 최소한 2승을 거둬야 4위 안에 들 수 있다.

한국의 막판 집중력은 놀라웠다. 브라질의 파울로 얻은 자유투를 꼬박꼬박 넣어 질 수 있었던 경기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최윤아의 활약이 눈부셨다. 4쿼터 6분30초쯤 49-55까지 뒤졌고 리바운드를 잇따라 뺏겨 패색이 짙었다. 그러나 최윤아의 자유투로 2점을 따라붙은 한국은 김정은의 종횡무진 활약과 김계령·최윤아의 자유투로 경기 종료 21.4초 전 55-55로 동점을 만들었다.

기세가 오른 한국은 연장전이 시작되자 초반부터 거세게 밀어붙였다. 최윤아가 자유투 2개로 리드를 잡고 출발한 한국은 변연하(4점)가 연장 종료 2분40초 전 왼쪽 사이드에서 3점슛을 깨끗하게 꽂아 넣으면서 62-57까지 달아났다. 여기에 이미선의 레이업슛이 이어졌고 최윤아가 경기 종료 57.5초를 남기고 자유투 두 개를 넣어 68-59까지 벌어지자 승부는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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