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하고 예측가능한 정부가 발전의 밑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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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호 22면

칠레가 부패 없는 투명한 국가로서 명성을 얻게 된 데는 감사원의 역할이 컸다. 중앙SUNDAY는 라미로 멘도사(48·사진) 칠레 감사원장을 한국 언론 최초로 지난달 18일 인터뷰했다. 여야 합의로 지난해 추대된 멘도사 원장은 국민에게 존경의 대상이다. 1m60㎝의 단신인 그의 얼굴에선 온화한 리더십을 엿볼 수 있었다.

라미로 멘도사 칠레 감사원장

막강한 권력의 소유자에게서 풍길 법한 권위의식은 찾아볼 수 없었다. 먼 한국에서 찾아온 손님에 대한 예의일까. 그는 비서실 입구까지 직접 나와 자신의 집무실로 기자를 안내했다. 청렴의 보루답게 집무실은 검소하게 꾸며져 있었다. 6∼7평 규모의 방에 들어서자 그는 “19세기 말에 만들어진 책상 등 사무집기를 그대로 쓰고 있다”며 미소를 지었다.

-칠레가 다른 남미 국가와 달리 부정부패가 통하지 않는 나라가 된 이유는 무엇인가.
“청렴한 공직사회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공무원의 시장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규제부터 철저히 없앴다. 그리고 비리를 저지르는 공직자는 엄단했다. 법과 질서가 존중되는 국가 시스템을 만들려 애썼다. 그 결과 국민이 법을 지키는 DNA를 갖게 됐다.”

-깨끗한 사회를 만드는 데 감사원의 역할이 컸다고 들었다.
“우리 감사원은 지금부터 175년 전인 1833년 설립됐다. 1927년 기능을 확대하면서 다른 나라들과는 비교가 안 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았다. 다른 나라 감사원이 공공부문의 사후 감사에 주력하는 데 비해 우리는 공직사회를 사전 감시하는 기능에 초점을 맞췄다. 비리를 예방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따라 모든 행정절차에 대해 감사원은 사전 심의할 권한을 갖게 됐다. 정부가 하는 계약이나 대외 조약 등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감사원이 미리 들여다본다. 정부 재정이나 공공기금이 투입되는 사업도 우리에게 사전에 자동 보고된다. 정부 부처들은 법규가 새로 만들어지면 감사원에 그 해석을 의뢰하는 게 관행이다.”

-아무리 권한이 강해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그만일 텐데.
“국가 지도자와 정치권 모두 감사원의 역할을 존중하는 전통을 세웠다. 국민도 우리에게 전폭적 신뢰를 보내준다. 감사원장은 비록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여야 합의를 거쳐 국민적 추대 형태로 선출된다. 감사원장 임기도 8년으로 길어 소신껏 일할 수 있다. 감사원부터 투명해야 공직사회가 투명해진다는 게 우리의 생각이다. 우리는 모든 감사 결과를 인터넷 등을 통해 속속들이 공개한다. 국민과의 끊임없는 소통을 의미한다.”

-비리를 저지른 공직자들은 어떻게 조치하나.
“곧바로 해임 조치하고 다시는 공직사회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한다. 관련 법을 엄정히 적용해 처벌한다. 다만 감사원의 사전 예방적 활동 때문인지 실제 비리로 적발되는 공직자는 많지 않다.”

-투명한 사회의 가장 큰 강점은 무엇이라 보는가.
“불법과 탈법이 줄어드는 것은 기본이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예측 가능성이라고 본다. 이렇게 됨으로써 비즈니스맨들은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칠레에서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다고 자부한다.”

-감사원이 칠레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무엇보다 감사원의 역할 덕분에 세금이 누수되지 않고 제대로 쓰인다는 인식을 국민이 갖게 됐다. 그 결과 탈세나 조세 회피도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칠레는 사회적 자본이 다른 남미 국가들을 넘어 선진국 수준에 도달한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그렇게 생각해 주니 고맙다. 칠레는 경제성장뿐 아니라 사회발전을 항상 고민한다. 국가의 결정은 국민을 위한 것이란 각계각층의 신뢰를 구축하려 노력한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하는 공동체를 만들고자 한다. 칠레가 남미에서 가장 안정된 사회 분위기와 치안을 확보하게 된 것은 그런 노력의 결과라고 본다.”

-칠레의 교육은 어떤가. 일부 상위 계층 출신만이 엘리트 교육을 받아 국가 요직을 독차지한다는 비판도 있는데.
“나도 중·고등학교는 공립학교를 졸업했고, 칠레대학을 나왔다. 현 미첼 바첼레트 대통령도 공립학교 출신이다. 칠레 공무원의 60~70%가 공립학교를 나왔다. 다만 근래 칠레의 공교육도 위기에 처한 것은 인정한다. 우리 감사원은 최근 정부가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크게 늘린 지원금을 일선 학교가 제대로 쓰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
멘도사 감사원장은 명문 칠레대학 법학교수였다. 지난해 4월 감사원장에 임명됐다. 정권이 바뀌어도 임기 8년은 보장된다. 현재 칠레 정부는 중도 좌파지만 멘도사는 우파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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