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밀라노 가구박람회…1900여 곳 참가 '디자인 올림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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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요즘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호텔 방을 잡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다. 도심에 있는 웬만한 호텔은 하루 자는 데 300달러를 내야 한다. 그것도 석달 전에 이미 동이 났다.

'2004 밀라노 국제 가구박람회'를 보러 오는 외국 관람객들이 몰리기 때문이다. 북한의 청류가구 기술인력도 에이스침대의 도움으로 북한 사상 처음으로 이 박람회를 관람했다.

밀라노의 한 복판에 자리잡은 중앙역에서 자동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20분 가면 닿는 밀라노 박람회장. 전시기간(14~19일)내내 인파로 북적여 관람객은 30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주최 측은 추산했다. 입장료 수입만 140억원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엿새 동안 전시장을 둘러 보는 입장료는 우리 돈으로 7만원이다.

밀라노박람회는 독일의 쾰른박람회와 함께 세계 가구 디자인 흐름을 이끄는 대표적인 전시회다. 전시장 규모가 20만㎥에 이르러 서울 삼성동 코엑스 전시장의 6배에 달한다. 매년 참가 희망 업체가 늘어나 전시장 맞은 편에 지금의 세배 규모의 새 전시장을 짓는 공사가 한창이다.

그러나 40년이 넘은 이 박람회에 제품을 전시한 아시아 가구업체는 하나도 없다. 1900여 참가업체의 85%가 이탈리아 업체다. 나머지는 독일.영국 등 일부 유럽 업체가 참가해 한 마디로 유럽 가구업체의 디자인 경연장인 셈이다.

이 박람회를 주관한 이탈리아 가구협회의 파올로 롬바르디 사무총장은 "해외 시장에서 디자인이나 품질을 인정받지 못한 업체들은 참가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 박람회에 참가하려면 박람회 디자인위원회의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 한다.해외 수출 실적도 평가 항목이다. 이에 따라 박람회의 고정 참가 멤버인 이탈리아 업체가 떨어져 나가야 참가 할 순번을 받을 수 있다.

국내 업체들은 이 박람회에 참관단을 줄기차게 보내고 있다. 이번에도 국내 10여개 업체가 디자이너와 기술진을 파견했다. 에이스침대 안성호 사장은 "국내 가구산업이 수출업종으로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지만 꾸준히 세계 시장 진출을 준비해야 한다"며 "가구산업의 부가가치는 다른 업종에 비해 뒤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통계청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이탈리아는 120억달러어치의 가구를 수출했고 이번 박람회 현장에서만 10억달러의 수출 실적을 올릴 것으로 추산된다.

파올로 사무총장은 "이탈리아는 200년 전부터 세계시장을 겨냥해 디자인을 해왔기 때문에 세계 가구산업을 이끌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이번 박람회에 국내 홍익대 등 세계 20여개국의 디자인스쿨을 초청해 그들의 제품을 전시했다. 또 젊은 작가들의 작품만을 보여주는 '영 디자이너'코너를 마련하는 등 디자이너의 육성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홍익대 최병훈 교수는 "밀라노 박람회를 보지 않고 세계 디자인의 추세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렵다"며 "가구박람회라고 하지만 사실상의 '디자인올림픽'"이라고 설명했다. 자동차와 전자제품의 디자인을 빼면 이곳에서 그 해에 유행할 디자인과 색상을 가늠할 수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이번 박람회에 선보인 가구디자인의 키워드는 '웰빙(Well-being)'이다. 이에 따라 부엌 가구와 화장실 위생도기 제품들이 예년보다 많이 선을 보였다. 또 사무용 가구와 침실 가구가 어우러진 혼합형 디자인도 눈길을 끌었다. 동양의 고가구를 연상하는 제품들도 나와 '글로벌 디자인'이 점차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밀라노(이탈리아)=고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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