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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동독 마지막 총리 드 메지에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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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독일이 통일되기 직전 동독의 마지막 총리를 지낸 로타르 드 메지에르(56)가 94년에 이어 두번째로 서울에 왔다.비올라 연주가 본업이던 그는 역사의 격랑에 휩쓸려 동독이 서독으로 흡수되던 결정적인 시기에 총리의 자리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된 정부에도 무임소장관으로 참여한 특이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북한이 판문점에서 비(非)탄도유도탄처럼 예측할 수 없는 행동으로 한반도사태를 다시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때에 그의 숙소인플라자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조찬대담을 했다.
-한국에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한국행정학회와 한독협회 초청으로 왔습니다.』 -정계를 아주떠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생활하고 있습니까.
『90년 10월 통일후 무임소장관으로 재직하다가 91년 물러난 이후 옛 직업인 변호사 일을 하고 있어요.』 -원래 비올라연주를 잘 한다고 들었는데 왜 음악을 직업으로 택하지 않았나요. 『89년 정치에 끌려들기 전에 10년동안 직업적으로 바이올린과 비올라 연주를 했습니다.지금은 왼쪽팔에 신경통이 있어 교회나 실내악단에서 취미로 연주하는 정도지요.음악은 여전히 내 생활의 일부예요.』 -음악도 해보고 정치도 해보셨는데 어느 쪽이 더 어렵다고 생각됩니까.
『정치하는 사람중에 음악을 할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총리의 피아노 연주는 프로급입니다.음악을 아는 사람이 정치를 하면 음악을 모르는 정치인들보다 나은 정치를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지휘자였던 쿠르트 마주르가 정치를 했더라면 어땠을까요.
『89년 동독국민들은 그에게 대통령이 돼달라고 요청한 적이 있어요.그는 거절했습니다.그는 1백% 음악가였어요.그가 옛동독의 민주화운동때 전면에 나선 일이 있지만 그건 정치인이 아니라휴머니스트로서였어요.』 -아직도 통일을 하지 못하고 있는 한국은 독일의 경험에서 많은 것을 배우려고 합니다.그러나 아시다시피 한국과 독일은 사정이 많이 달라요.
『그래요.한국이 완전분단돼 있는데 반해 독일은 절반의 분단상태였다고 하겠지요.남북한처럼 동서독은 전쟁도 하지 않았고 서신이나 전화를 통한 교류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노인들을 중심으로한 인적교류는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통일을 가능케한 외적 요인은 어땠습니까.
『외적 요인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눌 수 있습니다.하나는 빌리브란트총리의 동방정책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안보협력기구(CSCE.지금은 OSCE로 확대 개편됨)입니다.이들 두 가지를 통해 동서독은 꾸준히 접촉했어요.』 -드 메지에르씨는 옛동독의 마지막 총리로 서독에 의한 흡수통일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까,아니면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까.
『「흡수」란 용어는 적절치 않아요.동독은 서독에 흡수된 것이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으로 독일연방(서독)에 편입된 겁니다.나도처음에는 통일에 오랜 시간이 걸릴 걸로 알았어요.독일통일은 이른바 「2+4」합의로 성사됐는데 이것은 동서독 과 4대 전승국모두의 합의를 필요로 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통일은 예상외로빨리 왔어요.지금 생각하면 통일이 빨랐던 것이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졸속 통일」로 높은 실업률을 포함한 후유증이 비판받고 있지 않습니까.지금 동독지역의 실업률이 15%,서독지역의 실업률이 11%나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물론 통일독일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특히 동독지역 주민들의 어려움은 큽니다.아직도 정부가 매년 1천5백억마르크(약 8조2천억원)를 동독지역의 경제재건을 위해 쏟아붓고있어요.정부의 이런 지원이 없었다면 동독지역도 다른 동유럽 나라들처럼 시장경제로 이행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을 겁니다.
지금 동독지역의 경제 성장률은 유럽에서 가장 높은 8~9%를 기록하고 있어요.』 -통일의 과정이 좀 길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없나요.
『그때 그렇게 통일이 안됐으면 통일 자체가 큰 난관에 부닥쳤을지도 몰라요.이건 근거있는 얘기입니다.나는 옛소련의 외무장관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를 잘 알아요.그는 내가 총리로 있을 때무조건 통일을 빨리 하라고 충고했어요.그의 말 이 맞았어요.그때 하나이던 소련이 15개의 공화국으로 나뉘지 않았습니까.그들모두의 동의를 얻어 통일을 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았을 겁니다.』 -고르바초프가 그때 그 자리(소련 공산당서기장)에 없었으면 독일통일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옳다면 독일통일은 역사의 우연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나요.
『그건 역사의 우연이 아닙니다.고르바초프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했던 건 사실이지만 독일통일은 동독 백성들이 통일을 원했기에가능했던 것입니다.고르바초프가 없었으면 통일이 늦어졌을 수는 있었겠지요.통일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동독사람들이 었습니다.』 -그래도 통일은 큰 충격이었을텐데….
『그렇습니다.특히 경제적으로 충격이 컸어요.그러나 정서적으로나 역사적으로는 통일이 독일민족에게 큰 행운이었어요.』 -통일후 동서독의 경제통합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그것은 표현을달리하면 동독지역의 시장경제 이행의 과정을 말하는 것인데요.
『동독지역은 아직도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구조 조정기에 있어요.90년 내가 총리로 있을 때 동독경제를 분석한 일이 있습니다.전체 기업의 3분의1은 경쟁력이 있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어보였고 나머지 3분의2는 파산하거나 감원등 대대 적인 합리화조치를 필요로 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통일을 하고보니 이 예상은적중했습니다.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동독기업의 생산성은 서독의그것에 비해 60% 수준인데 고용인원은 제조업의 경우 2배,농업의 경우 3배나 됐으니까요.그래 서 통일후 감원을 하고 그 결과로 실업이 크게 늘어난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었어요.그러니까통일후의 경제적인 부작용은 통일 때문이 아니라 40년간 계속된사회주의체제의 실정(失政)에서 온 것입니다.』 ***옛동독간부재판 公正치 않아 -그렇다면 사회주의란 체제는 처음부터 현실성이 없는 환상이었나요,아니면 발상은 좋았는데 레닌.스탈린과 귀하를 포함한 그들의 후배들이 운용을 잘 못한 건가요.
『나를 그들과 같은 사회주의자로 분류하지 마세요.나는 크리스천이었을 뿐입니다.사회주의 자체가 잘못되지는 않았어요.사회주의를 통해 인간의 조건을 개선한다는 마르크스의 이론은 옳았습니다.그러나 그것을 현실정책에 옮기는 과정에서 개인을 무시하고 인간을 집단화한 데서 일이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한국이 남한의 북한 흡수로 통일이 되는 경우 북한 지도층 인사들을어떻게 처리할 것인가는 어려운 과제의 하나가 될 겁니다.그래서우리는 통일된 독일에서 옛동독 지도자들이 어떤 대우와 처벌을 받는가 관심을 갖고 지켜봤어요.옛동독의 공산당 제1서기 에리히호네커가 서독의 법률에 따라 재판을 받았습니다.다른 지도자들도기소되고 재판을 받았는데 그런 일이 공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통일과 같은 역사적인 변혁은 역사가 판단해야 합니다.법률가나 판사들이 판단할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나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어서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지만 2백40명에 달하는옛동독 공산당 간부들을 범죄자로 다룬 것은 옳지 않았어요.호네커를 비롯한 옛동독 지도자들을 기소하고 재판한 것은 「불공정」(unfair)했다기보다 「공정하지 않았다」(not fair)고 생각합니다.프랑코총통의 장기독재가 막을 내린 뒤의 스페인처럼 대대적인 사면을 내렸어야 했어요.
물론 살인이나 고문,그리고 과도한 권력 남용 따위는 제외돼야겠지만….』 -정치적인 통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통일후의 사회적인 통합이라고 생각됩니다.통일독일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고 있습니까.
『전적으로 동감입니다.사실 정치적인 통일은 시작에 불과해요.
내적.감정적.사회적 통합이 이뤄져야 비로소 진정한 통일이 되는것인데 그러자면 한 세대 이상의 시일이 걸립니다.인내가 필요해요.역사를 연(年)단위가 아니라 세대단위로 기억 해야 합니다.
』 ***東歐국가들 공산회귀 不願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에서공산주의 정당들이 부활하는 것같은 조짐이 보이는데 그들의 득세가 시장경제 이행을 방해할 정도는 아닌가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나라마다 사정이 달라요.그러나한가지 분명한 것은 아무도 공산주의 회귀(回歸)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현재 동유럽국가들의 공통된 특징의 하나는 행정이마비돼 있다는 것입니다.공산주의자들이 선택되는 것은 그들이 행정전문가란 점 때문이지요.헝가리 총리 줄러 호른과는 개인적으로잘 아는 사이인데 그는 자신이 공산주의자가 아니라 시장경제주의자임을 강조합니다.러시아의 경우는 좀 달라요.개혁이 기층시민들을 너무 뒤흔들어 놓아 그들은 과거와 같은 안정을 희구(希求)하게 된 겁니다.』 -북한으로 얘기를 돌려봅시다.북한은 심각한딜레마에 빠졌어요.개혁을 하면 하는 대로 문제가 크고 안하면 경제를 일으킬 수 없어 체제가 위협받습니다.그런 어려운 사정을반영하는 것인지 요즘은 판문점에서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을 해 한국과 미국을 자극하고 있어요.드 메지에르씨가 김정일(金正日)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내게는 김정일에게 충고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그러나 굳이 한마디 하라면 하루빨리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나고 자유선거를 실시해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김정일더러 정치적인 자살을 권하는 처방같은데….
『어느 나라에서나 공산주의자들은 스스로 개혁할 능력이 없는 사람들입니다.북한은 확실한 붕괴의 과정에 들어섰다고 봅니다.』-독일의 경험에 비추어 한국 사람들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 것이바람직합니까.
『나는 구체적으로 한국의 사정을 모르지만 일반론을 말한다면 대화하는 것 말고는 취할 선택이 없다고 봅니다.그리고 한국의 언론은 북한 주민들에게 외부의 실상을 알려 그들이 지상 천국에살고 있다는 환상을 깨주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 까요.』 -아침 일찍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유재식 대중문화팀장.전베를린특파원] ▶1940년생 ▶정치가.변호사 ▶옛동독 기민당(CDU)대표 ▶옛동독 총리겸 외무부장관 ▶독일 통일후 집권 기민당(CDU)부총재 역임 ▶91년10월 정계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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