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돌아올 40억 빚 갚을 길 없어 막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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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재 가공업체인 A산업(경기도 시화공단)의 B사장(49)은 요즘 잠을 못 이룬다. 오는 6월 돌아올 40억원의 은행 빚을 갚을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은행에서는 "일부라도 갚으라"고 벌써부터 성화다. 하지만 30여명의 직원 월급조차 주기 힘들 정도로 최근 회사 사정이 급격히 나빠졌다.

그는 "내수 침체가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올 들어 매출이 지난해보다 20% 줄었고, 원자재값은 세차례에 걸쳐 15% 뛰었다"며 "외환위기 때에도 흑자를 냈었는데 올 1분기 처음으로 적자를 냈다"고 말했다. 여기에 재작년 6월 설비 확충을 위해 대출받았던 돈의 만기가 눈앞에 닥치면서 위기를 맞게 된 것. B사장은 "정책자금을 지원하는 기술신용보증기금에 '얼마라도 좋으니 대출해 달라'고 서류를 넣었다"며 "그러나 다른 중소기업들도 워낙 아우성이라 차례가 올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쉬었다.

중소기업들이 1~2년 전 대거 빌렸던 은행 빚의 만기가 올해 본격 도래하면서 자금흐름에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 경기침체.원자재난에 허덕이는 등 경영 환경도 안 좋아 자칫 중소기업발(發) 금융위기까지 우려되는 상황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중소기업 대출은 2001년까지만도 연간 15조원 안팎이었으나 2002년 37조원, 2003년 35조원으로 급증했다. 대출금은 보통 1~2년 단위로 갚기 때문에 이 돈은 올해 집중적으로 만기가 돌아온다. 대기업들은 그러나 2002~2003년 중 은행 빚을 오히려 2조8000억원 순상환(빌린 돈보다 갚은 돈이 많은 것)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경기 회복을 기대하고 대출을 많이 받았고, 은행들은 대기업이 돈을 안 쓰자 중기 대출을 늘렸던 것이 지금 와서 부담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2001년 벤처 거품이 꺼지면서 벤처기업들이 자금난에 몰리자 정부가 주도해 발행했던 2조3000억원 규모 프라이머리 CBO(채권담보부증권)의 만기가 다음달부터 돌아오게 돼 벤처기업들의 위기감도 고조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금융권에서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중소기업의 연체율은 2002년 말 1.98%이던 것이 지난해 말 2.1%에서 지난달 말에는 2.8%로 뛰었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경제본부장은 "최근 수출이 호전되고, 올 성장률도 예상보다 높아질 전망이지만 이는 290만 국내 중소기업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라며 "'대기업발 외환위기'와 '가계부채발 카드대란'에 이어 '중소기업발 금융위기'가 우려될 정도"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김시래(팀장.산업부), 홍승일(경제부), 장정훈.강병철(이상 산업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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