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피치] 153. 위기를 기회로 만든 박종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02면

'인사이드피치'는 운이 좋다. 꼭 13년 전 이맘 때 '기록의 사나이' 박종호를 일찌감치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성남고 3학년이었고 손꼽히는 유망주였다. 그는 그때부터 다부졌다. 까까머리 고등학생이었지만 자기 주장이 뚜렷했다. 인터뷰를 처음 해본다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광대뼈가 드러나는 얼굴선과 낮은 톤의 목소리, 유난히 반짝이는 눈동자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그는 "파이팅 좋고 부지런한 삼성 이만수 선수가 좋다. 그런 프로선수가 되겠다"고 다부지게 말했다.

달라진 게 있다면 수비 위치다. 지금은 2루수지만 그는 당시 고교 최고의 유격수였다.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췄고, 리더십과 승부근성 역시 남달랐다. 프로와 대학에서 모두 눈독을 들였던 것은 당연했다. 그는 성균관대와 LG 사이에서 갈등했다. 실력이 뛰어난 선수가 그렇지 못한 동료를 데리고 대학에 진학하는 게 '동료애'로 통할 때였다. 그때 그는 프로를 택했다. 그는 "집이 어려워 돈이 필요했다. 그리고 어차피 프로야구선수가 될 건데 일찍 가서 승부를 걸고 싶었다"고 한다. 그는 계약금.연봉 각 1200만원을 받고 LG 유니폼을 입었다.

큰 꿈을 갖고 프로선수가 됐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주전자리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주전 유격수는 1년 먼저 입단한 이우수가 차지하고 있었다. 박종호에게는 자리가 없었다. 그는 난생처음 '후보 선수'가 됐다. 2군으로 내려가기도 했다. 처음 맛보는 좌절이었다.

그 좌절의 시간에서 빛을 발견한 건 수비 위치를 2루수로 바꾸면서였다. 당시 LG 이광환 감독이 권했다. 박종호는 유격수로서 자존심이 강했지만 선뜻 제의를 받아들였다. 그는 "유격수 자리에서 밀린다는 생각은 사치였다. 우선 게임에 나갈 수 있는 자리가 필요했다. 나를 위해, 팀을 위해 2루수 전환이 바람직했다"고 회상한다.

동네야구라도 한번 해본 사람이라면 알지만 유격수와 2루수는 비중이 다르다. 유격수가 화려하고 앞에 나서는 자리라면 2루수는 뒤에서 받쳐주는 자리다. 박종호는 자신의 말대로 생존을 위해, 그리고 팀을 위해 2루수 전환을 수용했다. 그는 진지하게 노력했다. 이만수를 보면서 배운 진지함과 성실함이 밑거름이 됐다. 그는 불과 3년 만에 박정태.강기웅 등 기라성 같은 선배들을 제치고 최고 2루수에게 주어지는 골든글러브를 차지했다.

그는 2000년 타격왕에 올랐고, 챔피언 반지를 네번(1994, 1998, 2000, 2003년)이나 꼈다. 지난해 현대에서 삼성으로 옮기면서 4년간 22억원에 계약, 명예와 함께 부(富)도 얻었다. 그리고 19일 현재 37경기 연속안타를 때려내며 프로야구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기록의 사나이' 박종호가 주는 교훈은 뭔가. 한발 뒤로 물러나는 것이 결코 좌절이 아니며 다시 도약하기 위한 훌륭한 뜀틀이 될 수 있다는 것 아닐까. 그는 주전 유격수 경쟁에서 밀렸지만 '포기'대신 '도전'을 택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았고 새로운 인생을 개척했다. 지금 그는 아무도 부럽지 않다고 한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