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태극마크 단 유니폼 입으면 에너지 샘솟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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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진=양광삼 기자]

이승엽(32·요미우리·사진)을 만난 1일 야구 대표팀 숙소(리베라호텔) 1층 커피숍. 그가 입고 나온 하얀 셔츠 뒷 면에는 한자로 ‘이길 극(克)’자가 써 있었다. 인터뷰 내내 승부와 자기 컨트롤을 강조한 이승엽에게 이날 입고 나온 셔츠는 매우 잘 어울렸다.

왼쪽 엄지 부상, 슬럼프, 2군 행. 2008년 전반기 힘겨운 나날을 보냈던 ‘국민 타자’ 이승엽이 다시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부상과 부진 탓에 베이징올림픽 출전 여부가 불투명했지만 이번에도 이승엽은 주위의 예상을 깨뜨렸다. 이 결정에 대해 그는 ‘전환점’이라고 했다.

-어떻게 참가를 결정했나.

“1군에 있었으면 망설였을 것이다. 2군에 계속 머무를 경우 올림픽에 참가하겠다고 구단에 이미 이야기를 해뒀다. 1군에 일찍 올라갔다면 무척 망설였을 것이다.”

-말리는 사람도 있었을텐데. 반대로 이 사람 때문엔 꼭 나가야겠다 결심도 했을 테고.

“아내가 많이 말렸다. 힘들텐데 제발 나가지 말라고 하더라. 집에서 야구 이야기는 거의 안 하는데 이번엔 내가 먼저 꺼냈다. 그리고 어차피 모든 결정은 내가 하는 것이다. 김경문 감독은 내가 부진한데도 신문 등을 통해 ‘반드시 (이승엽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해오시더라. 김기태 코치(요미우리 2군)를 통해서도 내 안부를 계속 물으셨다.”

-감독이 안부를 자주 물어봤기 때문이라면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

“(잠시 말을 멈추다가) 어쩔 수 없다.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결정했다. 기요타케 요미우리 대표도 내 마음을 잘 안다. ‘나라의 일(국가 대항전이라는 뜻)’ 아닌가. 팀 입장에선 가라, 가지말라는 말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수 차례 대표팀에 뽑혔다. 여전히 결정할 때마다 ‘한국인’ 이승엽이 중요한가.

“태극기를 보면 마음이 이상해진다. 뭔가 가슴 속에서 올라온다. 왜 그런지는 설명 못 하겠다. 주위에는 우스개 소리로 ‘가문의 영광’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어릴 때부터 태극마크는 달고만 있어도 좋았다. 대표팀 유니폼을 입으면 에너지가 생긴다.”

-많은 이가 이승엽의 올림픽 불참을 예상한 이유 중 하나가 3월 예선전 이후 부상과 부진 때문이었다. 실패라는 단어가 머릿 속에 없지 않을텐데

“잘 해도 본전이겠지. 항상 불안감은 있다. 올림픽에서 실패한다면 실망감도 크겠고, 모든 게 물거품이 될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나는 올시즌 내내 바닥에서 기었다. 더 떨어질 것도 없다.”

-입국하면서 ‘아직 죽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어떤 뜻인가.

“아직까지 괜찮다는 뜻이다. 물론 20대 때 보다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관록은 더 생겼다. 그리고 왼손 부상에서 완벽하게 나았다는 이야기다.“

-일본 언론에선 이승엽의 대회 참가를 놓고 신경이 곤두섰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까지 벌어져 입장이 곤란할 수도 있겠다.

“내가 일본 타도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했다는 소식도 인터넷에서 봤다. 물론 그런 말은 하지도 않았다. 다만 일본을 이겨야 메달을 딸 수 있고, 이건 어쩌면 두 나라 사이의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과 한국은 서로에게 민감하고, 또 공교롭게 야구는 그런 것이 자주 노출되는 단체 종목이다.”

-올림픽 출전과 관련, 잘 하면 잘 할수록 복귀 이후 부담이 많겠다.

“일본에서 5년째 야구를 하고 있다. 지바 롯데 시절부터 많은 경험을 했다. 한국 야구에서 보낸 9년 보다 일본에서 더 많은 시련을 겪고 경험했다. 혼자 싸워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혼자 싸워가는 방법을 설명해달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싸울 때는 상대를 해치는 게 아니다. 나와 싸우고, 내 자신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4월 한달 동안 한국의 누구와도 연락을 안했다고 들었다. 여러 야구 선배들의 조언과 도움을 청했을 법도 한데.

“배부른 소리일지 모르겠지만 내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강하게 크고 싶은 마음이 아직도 있다. 막내인데다 어려서부터 주위에서 좋은 코치의 조언과 도움을 많이 받았다. 퍼뜩 이런 생각이 들더라. 내가 컨트롤해서 이겨내지 못하면 나중에 누구에게도 설명해주지 못한다는 것 말이다. 아들 은혁이에게도, 그리고 야구 후배들에게도 해줄 말이 없을 것 같았다.”

-혼자 싸워가면서 2004년 지바 롯데 시절이 더 힘들었나, 올 해 전반기가 더 힘들었나.

“당연히 올해였다. 요미우리니까. 내 자신이 그렇게 바닥으로 떨어질 줄 몰랐다. 충격이 컸다. 2군 경기에 나서니 관중석에서 야유가 들렸다. ‘거액을 받는 4번 타자 나오셨다’고 조롱했다. 물론 ‘기다리고 있다. 빨리 (1군에) 올라가라’는 격려도 함께 있었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이승엽에게 베이징 올림픽은 어떤 의미인가.

“전환점이다. 이 코너(베이징올림픽)를 돌면 더 좋은 길이 나올 거라는 생각이다. 지금까지 내 야구 인생에서 실수는 있었지만 크게 무리한 결정은 없었다고 본다. 비난과 칭찬도 어차피 내 결정에 의해서 이뤄진다. 이번에도 그렇게 만들 것이다.”

글=김성원 기자, 사진=양광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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