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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인터넷 실명제 약이 될까 독이 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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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12일 선거법상 인터넷 실명제가 시작됐다. 하지만 관련 인터넷 언론사와 시민단체들이 반발해 실명제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개정된 선거법에 따르면 앞으로 각종 인터넷 언론과 포털 사이트 등의 게시판.대화방에서 정치적 의견을 밝히려면 인터넷 아이디가 아닌 실명을 써야 한다. 어길 경우 과태료를 문다. 인터넷 실명제 어떻게 봐야 할지 찬반토론으로 공부해보자.

▶ 어기준(한국컴퓨터생활 연구소장)

인터넷 실명제는 국민의 주민등록 정보를 바탕으로 신분이 확인된 사람만 게시판 등에 의견이나 정보를 올릴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게시판은 우리의 독특한 인터넷 문화로 자신의 의견을 올리고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된다.

게시물 가운데 공감을 얻는 내용은 네티즌에 의해 복사돼 다른 게시판에 올려진다. 그리고 댓글 형태로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뤄져 여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러한 게시판 문화에 익명성이 더해져 인터넷 민주주의가 꽃피웠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익명성은 가면과 같은 역할을 한다. 자신의 의견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불의와 맞서게도 한다. 반면 무책임하고 폭력적이며 음란한 모습을 보이게도 한다.

비리를 인터넷에 공개해 시정시키는 게 익명성의 밝은 면이라면 학교 홈페이지에 친구에 대한 헛소문을 퍼뜨리는 것은 어두운 면이다.

정부는 이처럼 인터넷에서 익명성을 악용하는 사례가 늘어 개인 피해와 사회 비용이 커지자 실명제를 도입하려는 것이다.

◇실명제의 장점=익명성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실명으로 글을 올려야 하므로 허위 사실.음란물 유포, 사이버 사기 등 범죄가 줄어든다.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헐뜯거나 욕을 하는 등 네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 상업광고, 동일한 내용의 글을 반복해 올리는 '도배 행위'가 줄 것이다. 허위 사실 유포로 빚어지는 국론 분열과 사회 혼란도 예방할 수 있다.

◇실명제의 단점=신분이 드러나므로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또 정부와 사회.기업을 비판할 때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비리를 견제할 수 있는 사회 정화 기능이 약해질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 등 개인 정보의 유출로 피해가 발생할 수 있고, 해외동포와 외국인의 인터넷 가입과 게시판에 글을 올리는 일이 불가능하다.

개인 정보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려면 비용이 들어가는 것도 문제다.

◇외국의 사례=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외국의 경우 게시판을 운영하는 웹사이트는 거의 없다. 대다수 운영자가 일방적으로 필요한 내용을 올리고 따로 연락할 것은 e-메일로 하게 한다. 정부기관의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게시판 실명제와는 성격이 좀 다르지만 프랑스에선 인터넷 서비스 이용자가 자신의 신상 정보를 올바르게 등록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다.

어기준 (한국컴퓨터생활 연구소장)

*** 찬성 "이름 내놓고 건전한 비판 해야"

▶ 유인혜 학생기자(서울 성신여고2)

인터넷에서 강제로 실명을 사용하게 하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생각하는 네티즌이 적지 않다.

실제로 우리 학교 홈페이지의 학생 건의 게시판엔 익명으로 사용할 때 불편 사항을 지적하고 상담하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 가운데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도 많았다. 그런데 얼마 전 한 학생이 근거없이 선생님을 비방하는 글을 올려 물의를 일으켰다. 학교에선 게시판을 실명제로 바꿨다. 그 뒤 학생 게시물이 눈에 띄게 줄었지만 터무니 없는 글은 사라지게 됐다.

인터넷에서 보장되는 익명성이 관료제 중심의 경직됐던 우리 사회의 분위기를 나이.학벌.직업에 관계없이 보다 평등하고 자유롭게 만든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익명성의 역기능은 치명적이며 무시할 수 없다. 익명이 보장되는 게시판에선 다른 사람을 비방하거나 불법 광고, 바이러스를 유포하기 위한 게시물 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터넷은 또 청소년들이 주로 이용하는데, 익명성은 이들의 자아 정체성 확립을 방해할 수도 있다. 현실 세계의 자신과 가상공간의 자신이 이중적인 생활을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시판이 정치 목적 등에 악용될 수도 있다. 실명을 사용하면 게시물을 올리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해 볼 수 있어 이런 부작용을 막을 수 있다. 이름을 걸고 하는 건전한 비판을 통해 사회 발전을 꾀하는 게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

유인혜 학생기자(서울 성신여고2)

*** 반대 "표현자유 가로 막는 통제수단"

▶ 김효혜 학생기자(경북 포항여고3)

익명성은 인터넷의 대표적인 특성이다. 인터넷에서 적극적이고 자유로운 의사 표현이 이뤄지는 것도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인터넷에서 실명제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겠다는 말과 마찬가지다.

게다가 실명제를 하면 사회의 약자와 소수의 의견이 보장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강력한 주민등록제가 시행되고 있는 곳도 드물다고 한다. 인터넷 실명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 시도한 적은 있지만 위헌 판결을 받았다.

의사 표현을 하는데 이처럼 국민을 상대로 실명을 확인하겠다고 생각한 나라는 거의 없다. 결국 실명제는 주민등록제처럼 어떤 면에선 국민을 통제하는 수단일 수 있다. 실명제 시행은 또한 네티즌들이 게시판의 글을 취사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얕보는 데서 나온 발상이다.

익명성이 부정적인 면을 갖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실명제 말고도 그 부작용에 대처할 수 있는 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경찰의 사이버수사대 활동을 강화하면 어떨까. 멀쩡한 연예인이 죽었다고 허위 사실을 유포하거나 사이버 테러를 하는 네티즌이 수사대에 걸려 법적인 책임을 졌던 예가 있다.

어려서부터 네티켓을 의무교육에 넣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법으로 강제하기보다 네티즌의 의식 성장을 통해 올바른 네티켓이 정착되도록 하는 게 더 효과적이고 발전적인 방안이다.

김효혜 학생기자(경북 포항여고3)

*** 찬반 토론은 이렇게…

한 주제를 놓고 주장이 맞설 경우 배심토의(패널토의) 방법으로 접근하면 좋아요.

학급 단위로 배심토의를 하면 토론에 앞서 쟁점의 핵심을 모둠별 협동학습으로 깊이 공부할 수 있습니다.

수업시간에 하는 토론은 시간이 충분하지 않으므로 두세 시간에 걸쳐 진행하거나 토론 며칠 전부터 역할을 정하고 전략을 짜야 합니다.

전체 진행은 교사가 맡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찬성.반대 측 배심원 각 두세 명, 배심원 도우미 각 두세 명, 발언 시간을 관리하는 진행 도우미 한 명 등 역할을 정합니다. 나머지 학생은 청중이 되는 거지요.

배심원을 포함해 학급원 모두 인터넷 실명제의 개념 이해→국내외 인터넷 게시판 사용 실태 파악→인터넷 실명제의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 알기→찬반 논거 및 대안 마련 등의 과정을 밟아 논리를 다집니다.

사회자는 토론의 흐름이 끊기지 않게 배심원이 골고루 발언하도록 유도합니다.

청중은 토론이 진행되는 동안 주로 듣기만 하는데, 경우에 따라 질문하거나 의견을 밝힐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청중에게 평가를 맡기면 참여도를 한층 높일 수 있습니다.

학습 평가는 토론이 끝난 뒤 찬.반 어느 한편에 서서 각자 주장하는 글을 쓰도록 해 결과물로 하면 됩니다.

☞본지 2002년 3월 12일자 20면(찬반토론 요령), 2003년 4월 16일자 31면.5월 17일자 8면, 2004년 1월 27일자 27면.2월 10일자 4면.2월 20일자 12면.3월 2일자 29면.4월 13일자 5면 등 참조.

이태종 NIE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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