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설>달아 높이곰 돋아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3절은 용과 어울리는 노래다.
『두레 우물에 물을 길러 갔더니 우물의 용이 내 손목을 쥐더라. 이 말이 이 우물 밖에 나면 들면 다로러 거디러 조그마한두레박아 네 말이라 하리라.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흥미로운 것은 이 「용」이라는 존재다. 『쌍화점』에 나타나는 「나」라는 여인의 바람피우기 상대역은 용만 빼고는 모두 인간의 남자다.회회(回回)아비,사주(寺主),술집 주인.그러나 용만이 인간이 아닌 상상(想像)의 동물이다.왜 그럴까.용은 일찍이 권력자의 상징이었다.왕이라 거나 고위층 사람을 직접 지칭하기 어려워 작사자(作詞者)는 「용」에 빗대어 노래를 지었을 것이다.
신라 선화공주의 남편인 백제 무왕(武王)도 용의 아들로 되어있다.용이 물가에 사는 과부와 정을 통하여 낳은 아들이라는 것이다.『삼국사기』 백제본기에 의하면 무왕은 법왕(法王)의 아들이다.따라서 그 용은 법왕을 가리키고 있는 셈이다 .
『쌍화점』의 용도 당시의 고려 왕,충렬왕(忠烈王)을 은유(隱喩)한 것일까.
충렬왕은 방탕한 기질의 왕이었다고 전해진다.원나라의 간섭으로왕권이 흔들리고 사회적으로는 퇴폐기운이 짙은 혼란기의 임금이기도 했다.이런 때 지어진 연락(宴樂)의 노래 『쌍화점』은 도읍안에 나돌고 있던 속요(俗謠)를 궁 안 승지등 이 충렬왕의 구미에 맞게 손질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음악과 춤에 맞춰 불려진 노래다.그렇다면 그 춤은 어떤 것이었을까.아마도 노래의 내용을 따라 시늉낸 동작의 춤이었을 것이다.회회아비가 여인의 손목을 쥐는데서부터 시작,성애(性愛)장면을 고스란히 연기했으리라 여겨진다.
『…더러둥셩 다리러디러 다리러디러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위위 다로러 거디러 다로러….』 「뜻이 없는 사설」로 치부돼온 이 대목이 바로 섹스 신을 읊은 것은 아닐까.
주로 디귿(ㄷ)음과 리을(ㄹ)음으로 엮어져 있는 것도 주목거리다.모르긴 해도 「다리러디러」의 「다리」는 신체의 다리를 가리킨 듯한데 디귿 소리와 리을 소리를 겹쳐 노래가 엮어지고 있는 것은 이 「다리」를 강조하려 햇는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같은 고려 가요 『동동(動動)』의 후렴 『아으 동동 다리…』의 「다리」도 신체의 다리를 가리킨 것같다고 한 정길례(鄭吉禮)여사 생각이 났다.
언제건 함께 만나자던 서을희(徐乙姬)여사의 말을 떠올리며 전화를 했다.
글 이영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