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제주민 울린 4.3위령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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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총선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선거열기가 점점 고조되고 있다.제주도도 마찬가지다.그러나 제주도의 4월3일만은 분위기가 다른 지역과 사뭇 달랐다.
3일 오전11시 「제주 4.3희생자 48주기 위령제」가 열린제주시 탑동 광장.
이곳에선 어느 정당,어느 후보의 연설회가 열리는 것도 아니건만 어림잡아 3천여명은 족히 됨직한 군중들이 시종 숙연한 분위기속에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하루전까지도 이곳저곳을 돌며 한표를 호소하던 총선 후보들도 이시간엔 모두 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무명신위(無名神位)」외에 4.3희생자 이름으로 추모제단에 모신 위패만도 9천3백여명.헌화하던 4.3희생자 유가족들의 눈이 발갛게 충혈됐다.
『그저 선거때만 되면 대통령후보건,국회의원후보건 4.3특별법제정을 공약하지 않은 후보가 없었습니다.그런데 왜 유독 4.3은 역사 바로세우기가 한창일 때도,거창사건특별법과 5.18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될 때도 우리 역사의 주변에서 만 맴돌고 있어야 합니까.』 위령제는 어느새 기성정치인에 대한 성토분위기로변해가고 있었다.
『이번 선거에서도 후보마다 4.3특별법 제정을 공약한다면서….누가 당선되든 그렇게 모은 「표값」을 진짜로 해낸다면 좋겠는데….』 4.3때 남편을 잃었다는 한 할머니의 눈에 고인 눈물이 한줄기 뺨을 타고 흘렀다.『4.3특별법은 반드시 제정돼야 합니다.』14대총선에서도,92년 대선(大選)에서도 후보마다 공약했던 「4.3 진상규명」이 아무런 해결이 이뤄지지 않은채 표류하고 있는 상태에서 다시 15대 총선을 맞은 제주 섬사람들의눈빛은 제주의 바람처럼 매섭고 차가웠다.

<제주에서> 양성철 기동취재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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