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 시평

소리만 요란한 독도 애국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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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독도는 한국인에게 특별한 상징성을 지닌다. 그래서 포퓰리즘적 애국주의가 등장할 수 있는 소지가 많다. 이번 독도 영유권 파동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일 어업협정 파기에서부터 해병대 파견 주장까지, 전쟁불사론에서부터 대마도 영유권 주장까지 무책임하고, 실효성 없고 오로지 전시용으로만 하는 발언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다. 일부 정치인이 이렇게 막무가내 식으로 나가면 정부 당국자들의 운신 폭도 자연 줄어든다. 총리의 독도 방문도 그런 결과라고 보아지는데 이런 식의 눈가림 행동으로는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 주일대사의 눈가림식 발언은 더욱 가관이다. “과거에는 주일대사를 소환하는 등 우리 정부가 강경대응으로 나섰다가 일본이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음에도 슬그머니 돌려보냈던 전례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다”면서 자신의 귀임이 상당히 늦어질 수 있음을 시사했는데 이것은 난센스다. 소환이란 대사로서의 직분을 다하지 못해 생겨났기에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앞장서서 귀임이 늦어질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외교관답지 못하다. 오히려 양국 간 오해만을 증폭시킬 뿐이다.

물론 총리나 주일대사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의 일부 정치인이 해마다 되풀이하는 인기성 발언에 대해, 그리고 그 발언에 대해 요령껏 넘어가야 하는 일본 정부의 어쩔 수 없는 태도에 대해 우리가 화내고 흥분하면서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우리가 경계해야 할 사실은 감정적 반응이나 냄비식 대응이 아닐까? 왜냐하면 이런 발언들에 대해 온 나라가 와글거리면 독도가 분쟁지역이라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일본의 편협한 보수주의자들이 바라는 사태가 아닐까?

우리는 독도를 실질적으로, 또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너무 간과하고 있는 듯하다. 일본이 센카쿠 열도를 반환하라는 중국 측 주장에 대해 일절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도 이 섬들을 물리적으로 차지하고 있어서다. 또 일본 정부가 러시아에 대해 쿠릴 열도 4개 섬 반환을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러시아도 일절 대꾸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 이유다. 이런 식의 영토 주장이 국제사회에서 통하지 않는 무익한 일이지만 해당 정부로서 안 할 수 없는 것은 자국 여론을 의식한 결과라고 본다.

그러니 독도의 명칭이 리앙쿠르암으로 바뀐다고 주권을 빼앗기는 것도 아니고, 독도 영유권에 영향을 주는 일도 아니다. 더구나 독도 영유권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법재판소로 갖고 갈 하등의 이유도 없다. 설령 일본이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하더라도 우리 정부가 응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재판이란, 특히 국제재판이란 당사자 모두가 조금이라도 억울하다고 생각할 때 성립하는 것인데 우리가 독도를 물리적으로 차지하는 마당에 재판까지 해야 할 아쉬울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대통령까지 나서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경우 치러야 할 대가가 간단치 않다. 1995년인가, 독도 문제와 관련해 김영삼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고 하자 온 국민이 환호했는데 3년 후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 일본은 결코 가까운 이웃이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엔화 차관이 많았던 우리나라에 대해 일본이 호의적으로 나왔더라면 외환위기로까지 비화되지 않았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있어서다. 그래서 버르장머리를 고치겠다는 발언은 부메랑이 돼서 애꿎은 우리 국민들 가슴만 찢어놓았다.

그런데 이번 독도 영유권 문제의 발단은 단순하다. 일본의 중등교과서 학습지도요령 해설서에 독도 영유권 주장을 담았다는 데서 비롯됐는데 일본 외무성 홈페이지에 독도를 일본 땅으로 표기하는 마당에 해설서에 그런 내용이 들어갔다고 이렇게 흥분할 필요가 있을까? 그게 못마땅했으면 외무성 홈페이지 내용을 고치는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그래서 이번 독도 영유권 파동은 국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내수용이 아니었느냐는 의혹이 있다. 촛불시위로 온 나라가 한바탕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오얏나무 아래에선 갓끈도 고쳐 매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는데 주일대사의 발언을 분석하면 오얏나무 아래서 일부러 갓끈을 고쳐 맨 듯한 느낌이 든다.

김정탁 성균관대·언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