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7재판 지상중계-유학성,허삼수씨 신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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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김상희 부장검사등 2명 담당) -피고인은 80년 5월4일 보안사에 간 적이 있나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그날 보안사엔 노태우.황영시.차규헌.정호용.허화평.이학봉.허삼수 피고인과 권정달 보안사정보처장이 「시국수습방안」에 대한 브리핑을 했나요.
『시국수습방안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그날 시국수습방안엔 비상계엄 전국확대,국가보위비상기구 설치,국회해산 등 세가지 내용이 있었나요.
『시국수습방안이 무엇인지 모르는데 내용을 어떻게 기억합니까.
』 -그후 피고인 등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서 시국수습방안을 지지하는 결의를 하도록 유도,수습방안을 추진키로 했나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 -참모총장 동정일지엔 피고인이 이희성 피고인을 면담한 사실이 기재돼 있고 이희성 피고인도 검찰에서 피고인이 5월15일 오후2시 찾아와 시국수습방안에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는데 사실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피고인은 5월17일 국방부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에 참석했지요.
『그렇습니다.』 -당시 제주도에는 전쟁 또는 전쟁에 준할 사변이 있어서 적의 포위공격으로 인해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되는등의 비상계엄 확대요건이 갖춰져 있지 않았지요.
『당시 3군사령관이던 제가 답변할 성질이 아닙니다.』 -피고인은 중앙정보부장으로 취임한 뒤 최규하 대통령 하야,신당 창당,정치활동 규제등 전두환 피고인의 정권획득 과정에 직.간접으로간여했지요.
『(잠시 생각하다)글쎄요.』 -정치활동규제대상을 선정,사회정화위에 통보하라고 지시한 적이 있습니까.
『그런 사실 없습니다.』 (김상희 부장검사 담당) -중정부장특별보좌관으로 임명돼 요원 3백여명의 숙정을 주도한 사실이 있나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김재규쪽 불순분자 색출을 위해 중정 경호원들의 신분조사에만 관여했습니다.』 -국보위 사회정화분과위원회 간사로 있으면서 공직자 숙정과 불량배 소탕에 관한 삼청계획을 추진한 일이 있나요.
『없습니다.보안사와 중정일이 많아 처음부터 간사직을 수행하지못하겠다고 양해를 구했습니다.』 -고교동창생인 허문도비서관으로부터 언론사 통폐합의 필요성에 대한 설명을 수차례 듣고 이에 동조했지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공작관계에서만 일해 언론관계에대해서는 상의할 여건이 되지 못했습니다.』 -보안사 핵심참모로국보위 중요조치 진행과정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국보위에서 일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기 때문인가요.
『부끄럽게 생각지 않습니다.당시 영광으로 알았고 우수한 사람들이 뽑혀 명예롭게 근무했습니다.』 (김상희 부장검사 담당) -피고인은 79년12월께부터 대공처 소속 이상재로 하여금 「강기덕 전무」라는 가명을 사용해 언론사 간부들을 접촉하게 했나요. 『그런 사실 없습니다.』 -80년2월께 이상재 준위는 허삼수 피고인의 추천에 따라 정보처 산하 언론대책반 반장이 돼 보도검열 업무를 조정.감독하게 되었지요.
『전혀 알지 못합니다.』 -당시 제주도를 포함해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할 요인이 있었습니까.
『당시 상황은 단순자로는 판단할 수 없습니다.정국을 주도하고있는 최규하(崔圭夏)대통령이 이같은 인식을 했다는게 중요하다고생각합니다.』 (김상희 부장검사등 2명 담당) -80년 김대중씨등 37명을 소요 배후조종 혐의로 체포한후 사법경찰관의 구속기간인 10일을 초과해 53일 동안이나 불법 감금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사람을 수사하면 현실적으로 그정도 기간이 필요합니다.
계엄하에서 깊은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피고인은 김영삼 신민당총재에게 정계은퇴를 종용해 80년 8월13일 총재직을 사퇴함과 아울러 정계를 은퇴한다는 성명을 발표하게 했나요.
『김대중 국민연합의장과 김종필 공화당총재가 모두 정계에서 은퇴한 마당에 경상도만 봐준다는 오해를 받지 않기 위해 김영삼총재에게 사퇴를 종용했습니다.』 -피고인은 80년 11월10일 전두환피고인에게 『방송매체의 공영화는 세계적 추세이므로 우리나라에서도 공영화하는게 좋겠다』는 의견을 낸 적이 있나요.
『그렇습니다.』 (김상희 부장검사 담당) -5월4일 보안사에간 적이 있나요.
『기억이 안납니다.』 -권정달 정보처장이 시국수습방안에 대해브리핑을 한 사실이 있는가요.
『브리핑받은 적 없습니다.』 -검찰 조사때는 시인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몸이 좋지 않아 빨리 쉬기 위해서,또 권정달이 얘기했다고 해 젊은 사람이 그렇게 말했으면 그럴 수 있겠다고 한 것입니다.』 -당시 일반적으로 중요한 결정은 보안사에서 미리 해놓은 다음 피고인에게 통보하는 것이 관례였나요.
『그런 모임이 있다는 것도 모릅니다.』 -5월17일 국방부 회의실에서 열린 전군주요지휘관회의엔 사단장급으론 유일하게 박준병 20사단장이 참석했지요.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80년7월말 해군총장공관에 갔을때 벽에 「전두환 장군 대통령 추대」라고 쓴 현수막 같은 것이걸려 있는 것을 본 사실이 있는가요.
『해군총장 관사에서 보았다.』 정철근,김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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