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선거 공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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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정치를 지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에 필요한 자질들을 구비하고 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는 선발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주장한최초의 인물은 그리스의 철인(哲人) 플라톤이었다.약 2천5백년전의 일이다.건축가나 의사의 하는 일이 사람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에 정해진 시험을 거쳐 자격을 인정받는 것처럼정치는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인간의 삶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으므로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은 입문에 앞서 정치적 자질에 관한 시험을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라톤의 이같은 주장은 현대사회에 이르기까지 많은 학자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자질없는 정치인들이 정치의 세계에 뛰어들어 온갖 폐해를 낳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자격시험」을 받도록 해싹이 노란 사람은 애당초 정치에 발을 붙이지 못 하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하지만 민주국가에서 피선거권의 자격요건은 아주 폭이 넓어 사전의 「자격시험」논리 같은 것은 현실성이 희박하다.그래서 정치인을 선발하는데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치인의 기본적 자질에 관한 유권자들의 판단이라는 점이 보편화돼 있 다.유권자들의 판단기준이 될 자격요건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소의 차이가 있지만 「정열」「책임감」「식견」으로 꼽은 막스 베버의 견해가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베버의 그같은 견해도 학문적으로는 타당한 일면이 있을는지 모르지만 현실적인 정치의 세계에서는 잘 먹혀 들어가지 않는다.우선 정치를 하려는 사람들 자신이 그런 자격요건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을 뿐더러 유권자들마저 그것을 판단 기준으로 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공해방지를 선거운동의 중요한 이슈로 삼으면서도 많은후보들 스스로가 공해의 주범으로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좋은 예다.그렇잖아도 소음에 시달리는데 최고 볼륨의 확성기 탓에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든가,밤늦은 시간까지 전화공 세에 시달려야한다든가,선거관련 유인물로 집안팎이 온통 지저분하다든가,유세장주변의 교통혼잡으로 고통을 겪어야 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선거공해」가 그것이다.그 때문에 투표를 포기하는 유권자들도 있을 것이고 보면 그런 방식으로 유권자 를 괴롭히는 자질없는 후보들은 아예 나서지 않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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