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 900점’ 위해 5년 간 3000만원 넘게 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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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22면

최정동 기자

내년 2월 졸업을 앞두고 있는 서울 모 대학 4학년 신지민(23·가명·사진)씨는 밤이면 ‘토익 악몽’에 시달린다. 원하는 점수를 받지 못해 취업을 못하고 부모님께 실망을 안겨드리는 내용이다. 토익 성적표도 큼직하게 등장한다. 꿈이지만 등골이 오싹하다.신씨는 지난해 1년 동안 캐나다에서 어학연수를 했다. 올 1월 귀국해서 난생처음으로 토익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990점 만점에 675점. 충격이 컸다. 처음 본 시험이라지만 그가 ‘영어’ 하나에 3000만원 이상을 투자한 것을 생각하면, 망연자실 그 자체다.

<5> 영어 점수에 ‘목숨 건’ 졸업 예정자

신씨의 꿈은 외국계 홍보회사에 입사하는 것이다. 이 꿈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어’다. 그래서 그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영어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영어와는 전혀 관련 없는 전공 공부 때문에 학기 중엔 따로 영어 수업을 수강했다. 교내에서 개발한 영어 회화교육 프로그램이다. 비용만 한 학기에 45만원. 모두 세 차례 수강했다. 방학 중엔 영어만 사용해야 하는 2개월짜리 캠프도 참가했다. 1회 250만원.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지난해엔 캐나다로 1년간 어학연수를 떠났다.

그곳에서 학비와 생활비로 쓴 비용만 3000만원을 넘었다. 총 투자한 돈은 3385만원. 대학 4년치 등록금(2000만원)을 훌쩍 넘어선다. 그렇다고 신씨의 가정 형편이 넉넉했던 것은 아니다. 입시 준비 중인 막내 동생과 대학생인 둘째 동생까지. 세 남매 학비 대기도 빠듯한 부모님 사정을 잘 안다. 어학연수까지 갈 형편은 아니었지만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겠다는 다짐으로 부모님을 설득했다. 어머니도 “첫째 딸이 잘돼야 두 동생도 잘되는 법”이라며 힘들게 지원해 줬다.

하지만 지금의 토익 성적으로는 외국계 회사는커녕 학교 졸업도 못할 판이다. 토익 750점 이상이 졸업 필수 요건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9월부터는 본격적으로 취업시즌이 시작되는데, 외국계 회사에 입사하려면 토익 900점은 넘어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주변의 얘기다. 이달 말까지 무슨 수를 써서라도 ‘토익 졸업’을 해야 하는 이유다. 그가 원하는 점수는 900점 이상이다.

플레시먼힐러드 코리아 박영숙 대표

대학에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을 보내는 신씨의 요즘 하루는 토익과의 전쟁이다. 오전 6시, 그는 알람 소리에 일어나 토익 라디오 방송을 켜는 것부터 시작한다. 7시면 종로에 있는 토익학원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수업은 10시에 시작하지만,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다. 150명이 넘는 수강생과 함께 강의를 받기 때문에 뒷자리에서는 듣기 수업뿐 아니라 강사의 목소리도 제대로 듣기 쉽지 않다. 오후엔 학원 친구들과 스터디, 그리고 자습을 한다. 공부할 곳이 마땅치 않아 학원 주변 커피숍을 찾는다.

오후 늦게까지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공부를 하노라면 종업원의 눈치가 보이지만 안면몰수다. 8월 24일, 토익 시험 날짜가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마음이 조급해진다. 하지만 이 생활도 이제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고 스스로 위로해 본다. 한 달만 더 고생하면 된다는 희망과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는 불안감이 뒤엉킨 요즘이다.


토익이 전부가 아니랍니다
외국계 홍보대행사에 취직하려면 영어가 중요하긴 합니다. 하지만 단지 토익 점수 올리는 것으로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업무상 외국기업과 소통하려면 듣기와 말하기는 물론 읽기와 쓰기가 두루 갖춰져야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해결 능력, 우리말을 논리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인턴 경험도 중요합니다. 대부분 글로벌 홍보대행사에선 인턴 경험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재학 중에 반드시 인턴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한 가지 꼭 권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꾸준히 두 가지 이상의 신문을 읽는 것입니다. 미디어에 대한 이해와 상식을 쌓고 세상 돌아가는 것을 파악하는 데 신문만큼 좋은 참고서는 없습니다. 온라인 뉴스가 아닌 종이 신문을 반드시 매일 정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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