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실히 준비했는데, 돌아온 건 ‘50번의 낙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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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20면

높은 칸막이로 나눠져 고시원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서울의 한 대학 도서관 열람실. 학과 공부보다는 고시나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대부분이다. 중앙포토

‘50전 50패’.
취업 준비생 노병현(26·경기도 성남시·사진)씨의 올해 상반기 채용 응시 성적이다. 올해 2월 서울 소재 중위권 대학 법대를 졸업한 노씨는 5월과 6월, 50여 군데의 대기업과 중소기업·공기업 채용에 응시했으나 모두 낙방했다. 학점 3.6점에 토익(TOEIC) 840점. 최상위권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 성실하게 지냈던 대학 생활이었다.

<1> 서울 중위권 법대 졸업생의 6개월 구직記

성적장학금을 두 번 받은 적 있고, 컴퓨터 조작에 소질이 있어 ‘MOUS’라는 실용 컴퓨터자격증을 독학으로 땄다. 혹시 몰라 한자자격증 2급까지 취득했지만, 결국 단 한 곳의 회사에서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결혼한 다음 떳떳한 가장이 되는 것’. 수십만의 평범한 대졸 미취업자 중 한 명인 노씨의 꿈은 소박하지만, 그의 하루는 지나치게 팍팍하다.

노씨의 하루는 오전 6시에 시작된다. 오전 6시30분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이 노씨 가족의 규칙. 그는 고등학교 교사인 아버지, 전업주부인 어머니, 2005년 한국전력에 취직한 두 살 터울의 누나와 함께 산다. 7시가 되기 전 집을 나선 노씨는 강남에 있는 토익학원에 가기 위해 지하철 분당선에 몸을 싣는다. 8시10분쯤 시작된 수업은 보통 10시쯤 끝난다. 학원에 그가 아는 친구는 전혀 없다.

학원을 마친 후 그는 경기도 성남에 있는 동서울대학으로 향한다. 학교 구내식당에서 2500원짜리 식사로 끼니를 때운 그는 도서관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동서울대 도서관은 비교적 한산한 데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 취업 준비생에게는 적격인 곳이다. 도서관에도 아는 친구는 없다. 또래 친구들 모두 구직난에 시달리고 있어 그들과도 거의 연락이 끊긴 상황이다. 그는 보통 오후 7시까지 공부를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가끔, 자신이 하루 종일 한마디도 안 했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최정동기자

동서울대 도서관에 가기 위해 그는 매일 지하철 복정역에서 내려 15분 정도 걷는다. 1㎞ 정도 되는 이 길은 그에게 롤러코스터 같은 곳이다. 자신도 모르게 의욕이 생겨 성큼성큼 내걷는 내리막길 같은 날이 있는 반면, 어떤 날은 ‘처음엔 자신 있었는데, 내가 어쩌다…’라는 자책이 들어 한없이 오르막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2005년 군 복무를 마친 노씨는 졸업할 때 까지 사법시험을 준비했으나 실패한 적이 있다. 하루 4시간씩 자며 공부했지만 뜻하는 대로 되지 않자,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미련 없이 포기했다.

취업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한 지난 4월, 솔직히 그는 2~3곳의 회사에는 합격해 골라서 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지원하는 곳마다 줄줄이 낙방하자 자신감을 잃기 시작했다. 특히 5월 말 3일 동안 5곳을 한꺼번에 낙방했을 때는 충격이 컸다.

10여 군데에서 면접을 보기도 했지만, 여러 명이 함께 치른 면접에서 그는 소외감만 느꼈다. 공통으로 주어지는 질문 외에는 면접관들이 특별히 자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한번도 느끼지 못했던 ‘학벌 콤플렉스’가 치밀어 오르기도 했다. 졸업 후 1년 내에 취직하지 못하면 기업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다는 것이 취업 준비생들의 상식이다.

6개월 내에 취직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노씨가 특별히 생각해 본 것은 없다. 대학원 진학이나 공무원 시험 준비 같은 것들은 마지막까지 몰린 사람들이 택하는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노씨의 한 달 용돈은 20만원. 이 돈으론 차비와 식비를 충당하기에 빠듯하다. 18만원 정도 되는 학원비와 시험 응시료, 교재비 등은 부모님이 부담한다. 치솟는 물가에 집안 살림은 큰 주름이 생겼다. 정년퇴직이 2년 남은 아버지는 요즘 “2년 내에 너희들이 시집·장가 가야 내가 낸 축의금의 본전을 뽑을 수 있다”며 안 하던 농담까지 한다. 취직이 잘 안 되자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와의 관계도 서먹해진 것 같아 노씨는 죄송스럽다.

그는 지금도 끈기 있게 오래 앉아 공부하는 것만큼은 자신있다. 사법시험을 준비하며 얻은 습관이다. 해외연수 경험이 없지만 영어 점수도 나쁘지 않은 편이다. 길을 갈 때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중얼거리며 독하게 영어 공부를 하다 보니 듣기 점수가 만점 가까이 나온다.

“착실하게 살아온 또래 친구들이 대부분 구직난을 겪고 있어요. 우리 세대에겐 가장 큰 아픔이지요. 나라에서 말로만 ‘경제 살린다, 취업난 해결한다’ 하지 말고요. 구직하는 사람들이 피부에 와 닿을 수 있는 정책을 폈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야 정상 아닌가요?” 노씨는 소박한 자신의 바람조차 쉽지 않은 현실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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