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볼쇼이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배주윤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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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본고장에서 10년 넘게 갈고 닦은 실력을 모국의 팬들께 보여주고 싶습니다."

오는 21일부터 한국 공연을 갖는 러시아 볼쇼이 발레단의 유일한 한국인 발레리나 배주윤(27.사진)씨. 정식단원으로 입단한 뒤 처음으로 국내 무대에 서는 裵씨는 고국 공연을 앞둔 설렘과 기대를 이렇게 밝혔다. 이번 '백조의 호수' 공연에서 裵씨는 제2막 3장의 나폴리 공주 역을 맡아 솔리스트로 춤춘다.

裵씨는 선발 과정이 엄격하기로 소문난 볼쇼이의 220여 단원 중 단 두명 밖에 없는 외국인 무용수 가운데 한명이다. 일본인 남자 솔리스트와 함께다.

많은 외국 무용수들이 입단을 시도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과 뛰어난 체격 조건을 요구하는 볼쇼이 극장의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 裵씨는 볼쇼이의 간판 레퍼토리인 '백조의 호수''호두까기 인형''지젤' 등의 작품에 솔리스트로 출연하는 것을 비롯, 1주일에 평균 2~3회 무대에 오른다.

裵씨는 서울 예술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1992년 러시아로 유학을 갔다. 하계 연수 차 한국에 들른 볼쇼이 발레학교 선생의 눈에 띄어 유학을 권유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당시 혼란한 러시아 상황과 약한 딸의 건강을 염려한 부모는 유학을 말렸지만 裵씨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裵씨는 이후 4년 만에 볼쇼이 발레학교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40여명의 졸업생 중 6~7명을 선발하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볼쇼이 발레단의 연수단원 자격을 얻었다. 3년 뒤인 99년에는 정식 단원이 됐다. 발레학교 졸업 후 이어지는 5년 간의 지도자 과정도 마쳤다.

물론 모든 것이 순조로왔던 것은 아니다. 탈진 상태에 이르게 하는 끈질긴 연습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춤 동작이 안 나올 땐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고 한다.

타고난 체형에 어릴적부터 기본기를 탄탄히 다져온 러시아 동료들을 따라잡기 위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체중 유지를 위해 초콜릿 하나와 물만 마시며 연습을 할 때도 한두번이 아니었다.

裵씨는 그 사이 큼지막한 상도 여러번 탔다. 97년 모스크바 국제콩쿠르에서 특별상과 인기상을 받았고 이듬해에는 러시아 중부 도시 페름에서 열린 국제콩쿠르에서 금상과 최고 듀엣상을 받았다. 2002년엔 러시아 마리엘 공화국의 공훈 예술가 훈장을 받기도 했다.

당분간은 볼쇼이 발레단에서 활동하겠다는 裵씨는 "장차 러시아 발레의 뛰어난 전통을 국내 후배들에게 전수하는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모스크바=유철종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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