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허송세월 65일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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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인 바른사회시민회의(공동대표 조동근 명지대 교수)는 7월의 마지막 날인 3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장을 접수시켰다. 299명의 국회의원 중 6월 세비를 반납하지 않은 251명을 대상으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었다. 18대 국회 개원 이후 원 구성 협상이 지연되자 ‘무노동 무임금’ 잣대를 국회의원들에게 들이댄 것이다. 타결될 듯하던 원 구성 협상이 장관 인사청문회라는 벽에 막혀 또다시 지지부진해졌다. ↗

청문회 실시를 둘러싼 여야의 이견에다 한나라당과 청와대 간의 엇박자까지 겹쳐 18대 국회는 공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적 이해 다툼 속에 골병이 드는 건 민생이다. 고유가 대책의 일환으로 영업용 화물차와 농어민에게 지급하기로 한 유가보조금은 관련 법안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 동안 7월 1일이란 시행 시기를 한 달이나 넘겼다. 기업들의 고통을 덜어주자는 세법 개정안에도 먼지가 쌓이고 있다. 18대 국회의 시작은 이렇듯 답답함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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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상임위에 배정될지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최근 국회에서 만나는 의원들이라면 누구나 내뱉는 말이다.

임기 시작(5월 30일) 42일 만에 가까스로 개원식은 열렸지만 국회는 여전히 공회전 상태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달 31일 여야 원내대표 간 원 구성 협상이 이뤄졌지만 그마저도 최종 타결 직전에 결렬됐다. 9월 정기국회까지 겨우 한 달이 남았다. 하지만 언제 원 구성이 이뤄질지 미지수다.

국회가 상임위 구성도 못한 채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고유가와 경기침체로 서민들은 하루 하루가 힘들지만 관련 대책을 다룰 법률안은 잠자고 있다. 1일 국회 의안과에는 총 509건의 법률안과 동의안이 수북이 쌓여 있다. [사진=안성식 기자]

답답한 건 의원들뿐만이 아니다. 국회 공전이 두 달을 훌쩍 넘기면서 각종 고유가·고물가 대책 및 민생경제 활성화 대책 법안이 소관 상임위도 정해지지 않은 채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층에 돌아갈 판이다.

◇추경 예산안 및 고유가 대책 처리 감감=18대 국회 들어 1일까지 정부 및 여야 의원들로부터 제출된 법안을 포함한 각종 의안은 모두 509건. 이 중 정부와 여당이 제출한 대부분의 법안은 6월 초 발표한 ‘고유가 극복 민생 종합대책’을 뒷받침하는 것들이다.

정부는 6월 20일 올해 첫 추가경정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고유가 극복 민생 종합대책’에 쓰일 재원 10조4930억원 중 4조9000억원을 조달하기 위한 것이다. 정부는 이 돈으로 저소득 봉급생활자와 자영업자에 대한 세금 환급, 농어민과 화물차·버스·연안 화물선을 운영하는 운송사업자에 대한 유가 보조금 지급을 처리할 계획이다. 그러나 국회 상임위 구성이 지연되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언제 꾸려질지 모르는 상황이어서 언제쯤 추경 예산안이 처리될지 불투명하다.

고유가 및 고물가 대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각종 법안들도 상임위 배정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영업용 화물차주에게 최대 월 60만원까지 유가보조금을 받게 해주기 위한 방안(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 에너지 절약 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비율을 높여 주기 위한 법안(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등이 포함돼 있다.

◇잠자는 경제 활성화 대책=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며 약속한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대책 법안도 국회 의안과에서 상임위로 이관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부는 우선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을 통해 법인세를 인하하려는 계획이다. 중소기업이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전환시킬 경우 1명당 30만원씩의 세액공제 혜택도 준다는 방침이다.

기업의 투자 확대를 통해 침체된 경기를 활성화시키려 했던 계획도 시기가 계속 늦어지고 있다. 출자총액제 폐지 대신 상호출자제한 기업의 주식 소유 현황 등에 대한 공시제도를 도입하기로 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처리가 지연되고 있어서다.

무(無) 상임위 국회는 공기업 민영화 관련 논의도 올스톱시켰다. 이 논의를 총괄하는 기획재정위의 소관 상임위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국회에는 공기업 대책 특위가 구성돼 있지만 정부의 안이 마련되지 않아 책임 있는 논의는 없이 공기업 사장단의 인사 논란만 계속되는 상황이다.



원 구성 지연으로 표류하는 민생 법안들

▶교통·에너지·환경세법 개정안
- 영업용 화물차·버스·연안화물선·농어민 등에 유가보조금 지급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 법인세 인하, 에너지 절약시설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비율 상향 조정,
중소기업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시 1명당 30만원씩 세액공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법 개정안
-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의 주식 소유 현황
등에 대한 공시제도 도입

글=이가영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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