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바이크 타지 맙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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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호 15면

모터바이크와 관련해 내 머릿속에 가장 깔끔하게 자리 잡은 사진은 패션 디자이너 조르조 아르마니가 자신의 트라이엄프 바이크를 타고 한적한 휴양지를 달리는 모습이다. 특유의 선글라스와 화이트 룩 차림으로 바람을 가르는 그의 모습은 모터바이크 타는 재미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생기가 느껴지고 싱그럽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는 날이면 그 장면이 자연발생적으로 떠오른다.

하지만 아쉽게도 내겐 모터바이크 면허가 없다. 만화가 박흥용이 그린 ‘호두나무 왼쪽 길로’라는 작품을 읽다가 바이크의 매력에 푹 젖어 면허 따기에 도전하리라 작심한 적은 있지만 며칠 안 가 제풀에 꺾여 버렸다. 물론 일 때문에 유명 바이크 제품들을 접할 때마다 싱숭생숭하는 마음까지 다스리진 못했다.

잘빠진 유선형 곡선이 안겨 주는 ‘보는 재미’, 말발굽 소리를 비롯한 온갖 배기음을 ‘듣는 재미’, 엔진 진동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느끼는 재미’, 청춘의 증거인 양 동경했던 잘빠진 라이더 재킷을 ‘입는 재미’는 비할 데가 없었다. 영화배우 이성재가 최민수의 집에서 엔진음을 듣는 즉시 바이크에 입문했다는 토크쇼에서의 발언이 저절로 이해가 됐다.

취재 때문에 만나는 30대 이상 남자 중 많은 숫자가 이미 바이크에 입문했다는 얘기를 전해 들으면서 그런 느낌이 나만의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팀 에디터 하나는 바이크 전문 거래 사이트에 올라온 매물들을 확인 중이다.

부쩍 늘어난 모터바이크 동호회야말로 대한민국 30대 이상 남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이 각양각색으로 진화 중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는 얘기가 있다. 인정한다. 도시에 갇혀 숨 막히는 스케줄을 소화해야 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몸과 하나 된 속도감만큼 스타일리시해 보이는 게 또 있을까.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좀 참아 줬으면 하는 대목이 있다.

수시로 몸을 뒤척이는 열대야의 연속이다. 활짝 열어놓은 창으론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다. 그 와중에 아파트 숲 사이를 뒤흔드는 바이크 배기음은 매력적인 구석이라곤 전혀 없는, 그야말로 소음 폭탄이다. 터널과 터널 사이에 낀 아파트 숲의 경우엔 남다른 데시벨을 기록할 정도다.

다양한 튜닝 탓인지 제각각인 배기음은 그마저 참을 만하던 일률적인 리듬감조차 산산이 부숴 버린다. 누군가는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시간에 누군가는 전전반측의 밤을 지새우는 셈이다. 이쯤 되면 “바이크의 매력이고 뭐고 입에 물고 있던 자두 씨라도 바이크를 향해 조준하고 싶다”는 누군가의 울분에 백분 공감하게 된다. 혹시 나만 그런가?글쓴이 문일완씨는 국내 최초 30대 남자를 위한 패션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루엘 luel』의 편집장으로 남자의 패션과 스타일링 룰에 대한 기사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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