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법안 20여개 처리 급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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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해 현행 국민연금 체제가 계속되면 113조원에 이르는 국민연금 적립기금이 2046년에는 바닥이 난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보험료를 적게 내고 연금을 많이 받는 현재의 국민연금 제도를 지금 수술하지 않으면 두고두고 국가 재정에 악영향이 미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말 보험료를 올리고 연금 지급액을 줄이는 내용의 '국민연금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16대 국회는 이 법을 처리하지 않았다. 보험료율을 올리면 임금이 줄어들고, 지출이 많아진다며 노동계와 사용자 모두 반발하자 '표'가 날아갈 것을 우려한 정치권이 손을 놓은 것이다. 총선을 의식해 16대 국회가 미뤄 놓았던 주요 민생.경제 관련 법안과 올 상반기 입법이 예정된 경제 법안은 20여개나 된다.

경제 전문가들은 총선이 끝난 만큼 경제.민생 관련 법안을 회기에 관계없이 우선 처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균관대 안종범 교수는 "연금 개혁이나 연기금 주식 투자 허용 등 주요 법안은 모두 국가경제와 직결된 중요한 사안인 만큼 국회가 가장 먼저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혁 성향의 의원이 국회에 대거 입성한 데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로 주요 정책 현안이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있다. 또 정치적 목적의 개혁 입법을 두고 여야가 충돌할 경우 경제.민생 입법이 뒷전에 밀릴 우려도 있다.

◇시급한 입법=16대 국회에서 미룬 주요 경제.민생법안은 공정거래법(계좌추적권 부활), 기금관리법(연기금 주식 투자 허용), 건축물 분양에 관한 법(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 등 6개다.

여기에 올 상반기 개정 또는 제정이 예정된 주요 경제법안도 간접투자 자산운용업법(사모 펀드 활성화), 신탁업법(종합자산관리 신탁제도 도입), 공적자금 상환법 등 15개에 이른다.

직원을 한명 채용할 때마다 법인세 또는 소득세를 100만원씩 깎아 주기로 한 고용증대 세액공제 제도는 올 1월부터 소급 적용해야 한다. 그러나 조세특례법이 아직 개정되지 않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광고.영화업 등 서비스업 창업 시 법인세를 50% 깎아 주는 제도도 발표만 됐을 뿐 법이 마련되지 않았다.

재정경제부 관계자는 "주요 정책의 입법화가 조속히 이뤄지도록 17대 국회가 열리면 6월 중 정치권에서 미루었던 기존 법안과 새로 추진할 법안을 한꺼번에 국회에 상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행정부의 움직임에 여당도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내세운 경제 관련 공약은 대부분 정부 정책 방향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일관성 지켜야=17대 국회가 행정부와 마찰을 빚을 소지가 크다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파트 분양가 공개나 출자총액제한 제도를 둘러싼 논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분양가 공개를 검토하지 않는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했지만, 열린우리당 일부 의원은 아파트 분양가 공개를 의원입법 형식으로 추진 중이다. 열린우리당은 당론으로 출자총액제도의 완화를 주장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는 출자총액제도의 기본 틀을 바꿀 수 없다고 반대한다.

강명헌 단국대 교수는 "눈앞의 필요에 의해 입법 과정에서 예외나 단서 조항을 만드는 등 기존 정책을 변질시키면 안 된다"고 말했다.

특히 국회에 처음 입성하는 민주노동당은 더 진보적인 정책으로 정부의 기존 정책에 변화를 요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화여대 전주성 교수는 "현재 한국 경제의 가장 큰 문제인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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