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급한 불’ 껐지만 방위비분담·파병 딴 불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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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휘발성 높은 독도 이슈가 반미 정서와 정부의 대미 치중 외교에 대한 여론의 반발로 번지며 제2의 쇠고기 파동과 한·미 동맹의 이상징후로 이어질까 우려했었다. 2002년 6월 주한미군 장갑차에 치인 여중생 2명 사망 사건이 그 예다. 이 사건은 대규모 촛불집회로 번졌고 그해 연말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당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최선의 해법은 정상회담 이전 독도 표기의 원상회복이었는데 그대로 됐다”며 안도했다.


하지만 독도 파동 진화가 한·미 동맹 강화로 이어지기엔 양국이 밀고 당길 현안이 아직은 너무 많다. 한·미 간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주한미군 전략적 유연성의 확대, 이라크 파병 연장과 아프가니스탄 재파병 문제 등 민감한 협상 사안들이 줄줄이 예정돼 있다. 현재 42% 대 58% 수준으로 한·미 양국이 각각 대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에 대해 미국은 균등 분담을 공개 요구하고 있다.

새 정부 출범을 전후해 미국이 요구했던 아프가니스탄 파병은 캠프 데이비드 정상회담 직전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미국의 생각까지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그동안 양국이 공개 언급을 꺼려 왔던 미사일방어(MD)체계와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대한 참여 여부도 정부로선 언젠가 답변을 줘야 하는 고민거리다. 사안 사안마다 정부는 돈과 국내 여론과 주변국의 입장을 의식해야 한다. 반면 독도 표기 원상회복은 정부에 새로운 부담을 안겼다. 김성한 고려대 교수는 “미국이 쇠고기 추가협상을 수용한 데 이어 독도에서도 정치적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인 만큼 향후 여러 협상에서 정부도 무언가 답해 줄 필요가 생겼다”고 말했다.

데니스 와일더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 선임 보좌관은 이날 다음주 한·미 정상회담 의제를 설명하며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과 함께 “이라크·아프가니스탄 등의 평화 구축에 한국이 미국과 동참하는 문제”를 넣었다. 말은 평화 구축이지만 내용은 한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고생하는 미국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를 협의하겠다는 의미다.

이처럼 독도 파동의 해결은 한·미 동맹의 악화를 막았을 뿐 한·미 동맹 강화에는 아직 미치지 못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독도 파동의 해결이 진짜 한·미 동맹 강화 효과로 이어지려면 결국 정부의 치밀한 후속 대미 외교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김현욱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정부는 먼저 ‘한·미 전략동맹’의 내용을 어떻게 채울지, 우리는 이 과정에서 무엇을 얻을지에 대한 큰 그림부터 그린 뒤 동맹 복원과 국익 확대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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