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Cover Story] 도요타 타고 하겐다즈로 디저트…중국 젊은 소비귀족 1억5천만명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내 친구 중 가장 부유한 R. 박사과정 중인 그는 돈 한푼 못 벌지만 올 5월 부모님이 생일 선물로 사준 1800cc 도요타 ‘코롤라’를 타고 나왔다. R의 동기는 모두 그런 차를 탄다. 6월 기름 값이 16.2%나 올랐는데도 도로엔 차가 넘쳤다. 점심 후 입가심으로 하겐다즈에 갔다. 아이스크림 값이 밥값보다 비싼, 1만원이 넘는 곳이다. 그런데도 사람들로 넘쳐났다.

R은 중국의 떠오르는 소비층을 대표한다. 중국 휘발유 값은 L당 6.11위안(약 907원). 한 달 기름 값은 약 15만원. 중국 노동자 평균 임금(약 35만원)의 절반쯤 된다. R이 코롤라를 굴릴 수 있는 건 부모의 저축 덕분이다. 중국과학기술연구원(CASS)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도시의 1억1900만 명 인구가 평균 7만9700위안의 예금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R은 사고 싶은 게 있으면 빚을 내서라도 사고 본다. 이런 부류가 2006년 말 기준으로 줄잡아 약 1억5000만 명은 된다. 은행 전체 대출에서 개인 신용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4.3%에서 2007년 12.5%까지 높아졌다. 바링허우 세대가 대거 등장하면서다. 9976만 장의 신용카드(2007년 말 기준) 가운데 77%가 바링허우 세대에게 발행됐다. 중국에선 자동차 보유대수가 아직 1000명당 27대(2006년 말 기준)다. 한국(329대)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친다. 하지만 R과 같은 소비층이 있는 한 ‘마이카’ 붐은 지속될 것 같다.

“중국 물가가 많이 올랐다는데 그래도 살 만한가 보구나”라는 나의 반응에 Y가 “모르는 소리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월급은 찔끔 올랐는데 물가는 다락같이 뛰니 서민만 죽을 맛이라고 푸념했다. Y는 연봉 700만원의 회사원으로 서민층에 속한다. 게다가 양극화도 갈수록 커져 상대적 박탈감도 심하다. 80년 0.23에 불과했던 중국의 지니계수는 2005년 0.47까지 높아졌다. 지니계수는 0∼1 사이 숫자로 1에 가까울수록 소득 분배가 불평등함을 의미한다.

Y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던 D는 요즘 부동산 시장이 걱정이라고 했다. 고위 공무원인 D의 아버지는 노후자금 마련을 위해 소형 아파트 한 채를 팔려고 내놨지만 보러 오는 사람조차 없더라는 것이다. 최근 베이징 시내의 미분양 주택은 2만5000채를 넘어섰다.

수다를 떠는 도중에 프랑스 유학 중인 H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얼마 전 박사 학위를 받았다. “축하한다”는 우리의 인사에 H는 “취직이나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중국은 더 이상 일자리 천국이 아니다. 2분기 평균 임금상승률도 6년 만에 처음 산업생산 증가율을 앞질렀다. 이러다 보니 일자리 구하기도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중국의 앞날을 그려봤다. R과 같은 세대가 늘고 있는 한 소비가 급격하게 위축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Y와 H의 고민을 들어보면 머지않아 중국도 인플레이션과 실업·양극화가 성장세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고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