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경매사 김성혜씨 “매일 그림 100점 이상 보며 안목 길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5면

 “25억부터 시작했는데 호가가 5000만원씩 올라갔어요. 박수가 터져 나오고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했죠. ‘29억5000만원, 더 이상 안 계신가요. 세 번 호가하고 마무리 짓겠습니다’라며 탕탕탕 망치를 때리던 순간, 얼마나 긴장되던지요.“

반 고흐의 작품 ‘누워 있는 소(Lying cow·1883)’가 국내 경매 시장에 처음 나와 미술품 시장이 들썩거렸던 지난달 11일. 최종 낙찰 금액을 알리며 망치를 두드렸던 케이옥션 미술품 경매사 김성혜(27·사진)씨는 상기된 표정으로 당시를 회상했다.

업계에서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미술품 경매사는 단상에 올라가 관중에게 최종 가격을 알리는 일을 한다. 이들은 경매 진행만 하는 게 아니다. 소장자로부터 작품을 받고, 판매 도록을 만들고, 대금을 받아 판 사람에게 전하는 일까지 경매의 전 과정을 담당한다.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필수적이죠. 그래서 고미술과 해외, 근·현대 등 전문 분야가 나뉘어져 있습니다.”

국내 경매사 중 나이가 어린 편인 김씨는 주로 해외미술을 담당하고 있다. 미국 코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던 김씨는 순수 미술보다는 다이내믹한 경매의 세계에 흥미를 느껴 미술사를 공부했다. “순수 미술에서 느끼는 창작의 고통보다 생동감 있는 경매의 매력에 더 끌렸어요. 소더비·크리스티 등 유명 경매회사를 둘러보면서 감각을 익혔지요. 대학 시절 서울옥션에서 인턴을 하며 본격적으로 일에 뛰어들었습니다.”

경매 전에는 프리뷰(preview) 전시를 열어 손님들에게 작품을 미리 공개한다. “정말로 그림을 살 사람들은 대여섯 번씩 계속 와요. ‘액자를 뜯어 달라, 뒤집어 달라’며 꼼꼼하게 살펴본 다음 경매에 응찰하죠.” 작품을 적절한 순서대로 배치하는 것도 경매사의 중요한 일이다. 보통 한 차례에 300여 점의 그림이 두세 시간 만에 새 주인을 찾는다.

김씨에게 경매는 하나의 ‘쇼’다. “경매사는 무대에 올라가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쇼맨십이 필요해요. 현장에서 관객의 의중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에 눈치도 빨라야 하죠. 손님의 표정을 읽고 호가를 조절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에서 장내 아나운서와는 달라요. “ 목소리나 제스처, 호가 발음이 정확해야 하기 때문에 아나운서와 같은 강도의 훈련을 받기도 했다.

미술품에 정해진 가격은 없다. 감정사가 평가한 감정가가 있긴 해도 결국 현장에선 ‘부르는 게 값’이 된다. 가격은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치솟기도 한다. “ 아무리 좋은 작품이라도 응찰자끼리 경쟁에 붙지 않으면 별 반응이 없어요. 그런데 분위기가 고조되면 갑자기 불이 붙어요. 추정가가 3000만원이던 것이 3억으로 결정된 경우도 있었어요.”

김씨는 하루 100여 점 이상의 그림을 들여다본다. “어느 일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경매사는 특히 공부를 많이 해야 하고 맹훈련을 받아야 해요. 끊임없이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아주 매력적인 직업입니다.”

김진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