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노트북을 열며] 베이징 올림픽은 ‘리닝 올림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가장 걱정스러운 건 ‘사고’다. 테러 같은 최악의 상황은 접어두고라도 경기 중 판정을 둘러싼 충돌과 몸싸움, 약물 복용 같은 돌발 상황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크다. 중국의 텃세도 극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은 미국을 제치고 종합우승을 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다.

장외에서도 중국의 텃세가 말썽이다. 베이징 올림픽 공식 스폰서 기업들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중국 당국이 스폰서의 권리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삼성을 비롯한 12개 공식 파트너로부터 각각 최고 1억 달러(약 1009억원)를 받고 올림픽 로고 사용과 각종 홍보·마케팅 권리를 줬다. 아디다스·맥도널드 등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BOCOG)와 계약을 맺은 업체도 11개나 된다.

문제는 중국 당국이 경쟁 업체들의 매복 마케팅(공식 파트너가 아니면서도 비슷한 분위기로 효과를 노리는 것)을 제대로 단속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국 업체의 매복 마케팅을 도와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국영방송 CC-TV의 올림픽 담당 아나운서와 해설자들은 자국 스포츠 브랜드 ‘리닝(Li Ning)’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방송을 한다. 리닝은 몇 푼 들이지 않고 전 세계에 브랜드를 노출하는 효과를 얻는다.

무려 8000만 달러를 BOCOG에 낸 아디다스로서는 펄쩍 뛸 노릇이다. 더구나 리닝은 ‘Anything is Possible(뭐든지 가능하다)’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아디다스의 ‘Impossible is Nothing(불가능은 없다)’을 표절한 냄새가 나지만 리닝 측은 자신들 슬로건이 먼저 나왔다고 주장한다. 아디다스 코리아에 문의했더니 “독일 본사와 아디다스 차이나에 알아봤다. 우리는 2004년부터 썼고, 리닝은 2005년부터 시작했다”고 알려왔다.

리닝은 ‘중국 체조의 전설’인 리닝(李寧·45)이 1990년 설립한 회사다. 나이키를 적당히 찌그러뜨린 듯한 로고는 ‘짝퉁’ 냄새를 풍긴다. 그럼에도 리닝은 고속 성장을 거듭해 중국 내 매출이 나이키·아디다스를 바짝 뒤쫓고 있다. 리닝은 중국 정부의 힘을 빌려 이번 올림픽을 통해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려고 한다.

역대 올림픽은 자국 스포츠 브랜드 이미지와 겹친다. 64년 도쿄 올림픽을 통해 일본의 아식스와 미즈노가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72년 뮌헨 올림픽은 독일의 아디다스에 날개를 달아줬고, 84년 LA 올림픽을 통해 미국의 나이키는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했다.

시선을 국내로 돌려보자. 우리는 올림픽과 월드컵이라는 지구촌 2대 스포츠 이벤트를 개최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하면 떠오르는 스포츠 브랜드는 없다. 국내 스포츠용품 업체는 직원 300명 이상 대기업이 7.9%에 불과할 정도로 영세하다.

스포츠 인구가 급증하면서 스포츠용품 시장은 점점 커지고 있다. 대한스포츠용구협동조합 권오성(비바스포츠 사장) 이사장은 “산학협력을 통해 최고 제품을 만들고, 양궁·태권도 등 세계 최강 종목을 중심으로 해외 시장을 공략해야 글로벌 브랜드가 나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용품 업체의 성장을 위한 법적·제도적 뒷받침, 짝퉁 제품 단속 등 정부의 지원도 필수다.

베이징 올림픽은 리닝 올림픽이 돼 버렸다. 2011년 대구 세계육상대회,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리닝이 경기장을 덮어버리지 말란 법도 없다.

정영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