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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위기 대응체계 제대로 작동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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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요즘 많은 국민이 국가위기대응 시스템에 대해 심각한 우려를 갖게 됐다고 생각한다. 왜 우리는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늑장 보고와 사전준비 부족, 그리고 부적절한 대응 조치라는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행태를 단절시키지 못하고 있을까.

우리나라 위기대응체계의 문제점은 무엇보다도 먼저, 위기대응체계가 법과 제도에 의해 운영되기보다 정치 논리에 따라 자의적으로 운영해 안정성과 지속성을 저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역대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사무처의 폐지와 설치를 반복해 왔고, 위기 발생 시 법규에 명시된 국가안전보장회의보다 당정협의회의, 통일안보정책조정회의 등과 같은 임시회의체를 시의적(時宜的)으로 운영해 왔다.

둘째, 기능별 위기관리 전문가 활용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셋째, 위기정보상황실의 권한과 기능이 미약하다. 현재 위기정보상황실은 설치 근거가 미흡해 각 부처의 위기관리 업무에 대한 조정통제권이 미약하고 상근인력 부족으로 실질적인 정보수집·분석·평가·종합보고 등 기능 발휘가 어렵게 돼 있다.

넷째, 정부-시민사회(NGO)-기업 간 협력체제(governance) 구축이 미흡하다. 마지막으로 부적절한 용어의 사용이다. 사족처럼 보일지 몰라도 현재 사용 중인 ‘외교안보’라는 복합어는 모순이다. 왜냐하면 안보의 여러 수단 또는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인 외교는 안보와 대등하거나 비중이 클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자칫 국가안보 정책이 특정 분야 중심으로 편향돼 수립될 우려가 있어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와 같은 여러 가지 문제점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국가위기대응체계는 제대로 작동되기 어렵다.

그렇다면 위기대응체계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국가위기대응체계 운영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 제도의 지속성과 안정성을 담보하도록 하고, 기존의 임시적인 조직이나 회의체 운영을 지양해야 한다.

둘째 통일·외교·국방·경제 등 각 분야의 위기관리 전문가를 발탁, 활용해야 한다. 오늘날 위협 요인과 유형에 따라 위기대응 조치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기능별 위기관리 전문가를 참여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위기관리 정책 수립 시 이상과 현실이 조화되도록 학자 출신, 실무 유경험자, 민간전문가 등을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편성·운영하는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셋째 위기정보상황실 기능을 보강해야 한다. 위기정보상황실이 평소 부처의 위기관리 업무의 조정통제는 물론 정보수집·분석·평가, 그리고 대안 제시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위기 기능별 조직과 인력을 보강해야 한다. 또한 신속한 상황전파 및 보고를 위한 전·평시 지휘통신망 일원화, 최첨단 정보수집 장비 확보, 중앙 및 지자체 간 수직·수평적 통합정보시스템 구축 등은 범정부적 차원에서 적극 추진돼야 할 것이다.

넷째 정부-시민사회(NGO) 간의 자율적 파트너십에 기초한 거버넌스 체제 구축으로 위기관리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의 참여가 확산될 때 국민과 함께하는 위기관리 업무도 실질적인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외교안보’라는 용어 사용을 시정해야 한다. 현행 ‘외교안보수석·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등 직제나 회의체 명칭을 ‘안보수석 혹은 안보보좌관·안보정책조정회의’ 식으로 조정해야 될 것으로 생각한다.

정찬권 한국위기관리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