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Sytle] 50만원대 몽블랑…펜촉만 23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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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수입품에 밀려 점점 사라져 가지만 국내 업체들도 만년필을 생산하고 있다. 사진은 국내 기업 자바가 만든 ‘로얄 골드’ 모델. [자바 제공]

플라스틱으로 된 몇 천원짜리부터 금과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1억원이 넘는 것까지-. 하지만 이것들은 모두 단지 ‘만년필’일 뿐이다. 차이는 무엇일까. 또 비싸다고 다 좋은 걸까. 내게 맞는 만년필은 어떻게 고를까.

 ◇핵심은 펜촉=필기구 하나에 몇 십 만원이라고 하면 선뜻 납득이 되지 않는다. 대개 이런 만년필은 펜촉 때문에 가격이 비싸진다. 50만원대인 ‘몽블랑 145’의 경우 펜촉 가격만 23만원이다. 일반적으로 만년필 가격의 30~50%는 펜촉이 차지한다. 펜촉이 비싼 것은 재료로 금이 사용되는 데다 주요 공정을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기 때문이다.

금으로 된 펜촉은 잉크와 닿아도 잘 삭지 않고 탄력성이 좋아 필기감이 뛰어나다. 여기에 고급 펜촉은 종이와 직접 닿는 끝 부분에 이리듐이라는 특수 합금을 덧씌우고 장인들이 직접 갈아서 만든다. 기계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다. 철저히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만년필을 고를 땐 자신에게 맞는 필체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 펜촉 굵기에 따라 F·M·B로 나뉘는데 글씨 크기가 작고, 주로 한글이나 한자 필기를 하는 사람은 세필인 F촉이 적당하다. 이보다 더 가는 글씨를 선호하면 EF촉도 있다. 글씨가 크고 알파벳을 주로 쓰는 사람에겐 M이나 B처럼 굵은 펜촉이 알맞다.

펜촉 끝 부분이 깎인 형태도 주목해본다. 날카로운 촉은 힘있는 글씨체에 좋고, 평상시 필기를 해야 할 경우에는 둥근 촉이 알맞다. 서명 용도라면 가는 선과 굵은 선을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이탤릭 촉’이 무난하다.

◇바른 필기 자세와 만년필 전용 잉크=만년필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펜을 지나치게 강하게 누른다. 이렇게 하면 펜촉이 벌어져 못 쓰게 될 수 있다. 만년필은 모세관 원리를 이용하므로 촉이 종이에 닿자마자 잉크가 흘러 나오게 돼 있다. 힘을 빼고 부드럽게 움직이는 것이 바른 필기 자세다.

만년필을 오래 쓰려면 필기구 제조사에서 만든 잉크를 구입하는 것이 좋지만 다른 회사 것도 만년필용이면 무방하다. 단 붉은색이나 보라색의 잉크는 착색이 잘 되므로 일주일 이상 잉크를 채워 둬선 안 된다. 제도용 잉크를 만년필에 쓰는 것도 금물이다. 빨리 굳기 때문에 펜촉이 막힐 수 있다. 펜에 채워둔 잉크는 시간이 지나면서 증발해 굳기도 한다. 잉크를 교체할 땐 흐르는 물에 펜촉의 등 부분을 씻고 몸체 내부에 10회 정도 물을 채웠다 뺐다 반복해 준다. 그런 다음 부드러운 휴지나 수건으로 펜을 가볍게 감싼 뒤 펜을 아래로 뿌리듯 몇 차례 털어내야 한다.

◇싼 만년필로도 충분=고급 만년필의 섬세한 필기감은 초보자가 느끼기 어렵다. 10만원 이하의 저가 만년필로도 충분히 부드러운 필기감을 맛볼 수 있다. 1만6000원인 로트링의 ‘아트펜’은 저가 만년필의 베스트셀러다. 외형은 단순하지만 다양한 종류의 펜촉을 써볼 수 있어 만년필 입문용으로 좋다.

온라인 샵 ‘베스트펜’에서 가장 많은 댓글이 달린 제품은 워터맨의 저가 만년필 ‘필레아’다. 5만원대인 이 펜은 가볍고 부드러워 필기를 오래 하는 학생들에게 적합하다. 저가 만년필 대부분은 펜촉이 스테인리스로 돼 있고 몸체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져 있다. 때문에 고급스러운 맛은 없지만, 펜촉이 망가져도 싸게 교체할 수 있고 무게가 가벼워 오래 써도 손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 장점도 있다.

‘고시의 메카’ 서울 신림동 일대에선 펠리칸의 ‘M시리즈’ 만년필이 ‘고시생 만년필’로 불리며 인기를 얻고 있다. 가장 많이 찾는 ‘M150’은 7만5000원 내외다. 가볍고 튼튼하면서도 잉크통이 커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사법시험 2차의 경우 장시간 직접 글을 써야 하는데 잉크통이 큰 만년필이 제격이기 때문이다.

◇비밀 잉크로 비밀 편지를=만년필이 인기를 끌면서 전용 잉크 제품도 다양해지고 있다. 장미·라벤더·바이올렛·오렌지 향의 잉크로 쓰면 향기 나는 글을 전할 수 있다. ‘매직 잉크’라는 이름의 무색 잉크는 주로 비밀 문서나 내용을 감추고 싶은 편지 등에 쓰인다. 처음 쓰면 무색이지만 불을 쬐면 연한 하늘색 글씨가 나타난다. 300년 이상 유지 보존되는 문서보관용 잉크도 따로 나와 있다.

◇고가 한정판=스위스 브랜드 카렌다쉬는 지난해 ‘1010 골드 한정판’을 선보였다. 10개만 제작된 이 만년필은 1억6000만원이다. 몸체가 모두 순금이고 주머니에 꽂는 클립 끝 부분엔 다이아몬드까지 박혀 있는 데다 한정판이란 희귀성 때문에 초고가로 책정됐다. 500개만 만든 ‘실버 한정판’은 1600만원에 이른다. 이 만년필의 몸체에는 정교한 시계 태엽이 조각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재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만년필 중 최고가는 프랑스 워터맨의 ‘세레니떼 다르 컬렉션’이다. 전 세계에서 161개만 제작됐고 국내엔 5개가 수입됐다. 고급 필기구 전문점 ‘펜갤러리아’에 따르면 개인 소비자로는 유일하게 한 수집가가 구입했다고 한다.

강승민 기자, 남윤서(서울대 국어교육 4년)·최은원(성균관대 영문 3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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