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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한국, 어이없는 기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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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박경덕 파리 특파원

바레인.부르키나파소.콩고.에리트레아.에티오피아.인도.모리타니.네팔.파키스탄.카타르.한국.시에라리온.남아프리카공화국.스와질란드.토고.우간다(알파벳 순) 등 16개국은 15일 유엔인권위원회에서 통과된 북한인권결의안에 기권했다. 기권국 대부분은 형편이 어려운 아프리카 국가들이다. 선진자본주의 그룹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인 한국이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투표 직전 주제네바 대표부 최혁 대사가 밝힌 것처럼 '북한과의 특별한 관계' 때문이다.

올해 인권위 투표를 앞두고 한국 정부는 고민이 많았다.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북한 내 인권상황에 대한 우려도 표명하는 일이 말처럼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 정부가 택한 방법은 '우리의 뜻과 입장을 국제사회에 밝힌 뒤 투표에는 기권한다'는 편법이었다. 유엔 투표 사상 보기 어려운 사례다. 그래도 정부는 "지난해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불참했던 것에 비하면 올해의 대응방식은 진전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견 맞는 말이다. 그러나 눈을 들어 전체를 한번 둘러보자. 우선 올해 결의안을 발의한 나라가 지난해 38개국에서 42개국으로 늘었다. 찬성국도 지난해 28개국보다 1개국이 많아졌다. 반면 반대는 10개국에서 8개국으로 줄었다. 이번에 통과된 결의안이 지난해 결의안보다 훨씬 강도가 높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북한인권상황 전반에 대해 조사할 수 있는 인권특별보고관을 두기로 한 것이 좋은 예다. 국제사회가 북한의 인권침해 상황을 지난해보다 훨씬 더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증거다.

지난해에도 우리 정부는 유엔인권위 투표를 앞두고 '북한을 위해' 올해처럼 많은 고민을 했다. 그 결과 국제사회가 OECD 회원국에 기대하는 태도와 기준을 모르는 체했다. 투표에 불참하는 고통과 비난을 감수한 것이다. 국제사회와 북한은 그때 우리의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습은 한번으로 족하다. 이젠 '북한의 인권을 걱정하는 국제사회'와 더불어 고민하자.

박경덕 파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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