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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17대 총선 결산 기획 시론

2. 개혁·보수·진보의 3두마차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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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4.15 총선에서 주권자는 대통령 탄핵을 추진한 야 3당에는 패배를, 이를 반대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에는 승리를 안겨주면서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아직 지역주의가 사라진 것은 아니나 향후 우리 정치는 개혁.보수.진보의 삼두마차가 끌고갈 것임이 분명하다. 이제 각 정당은 자신의 색채를 분명히 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딱지 붙이기'가 아니라 비전과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 여당은 오만.나태함 떨쳐야

먼저 열린우리당은 자신의 원래 실력보다는 탄핵에 대한 국민적 분노에 힘입어 제1당이 되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민주 수호와 개혁 완수를 호소하였으나, 절충식 정책노선과 마구잡이 인사영입으로 정체성마저 모호해져 있음도 돌아보아야 한다. 체제를 '보수(補修)'하는 청사진과 실천 계획없이 '이미지'와 '바람'에만 의존하거나, 집권당으로서의 단물에 취해 오만.나태.부패해진다면 당의 미래는 어두울 것이다. 미국 민주당 정도의 능력을 갖춘 중도개혁 정당으로 위상을 정립하고, 산적한 국내외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 무한책임을 다하길 빈다. 시민사회운동의 집권당에 대한 감시와 비판은 계속될 것이며, 기존 야당과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에서 전개될 민주노동당의 공세도 대기 중임을 기억해야 한다.

의회 다수파라는 점을 믿고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을 우중(愚衆)으로 치부했던 야 3당은 자신들의 오만함과 안이함으로 패배를 자초하였음을 깨달아야 한다. 이제 우리 정치에서 '적과의 동침'을 선택했던 민주당과 보수 본당을 자처한 자민련을 위한 자리는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보수(保守)'가 수구나 박정희로의 회귀가 아님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내부에 존재하는 냉전적.극우적 경향과 단호히 단절해야 할 것이다. 자신보다 왼쪽에 있는 사람을 친북 좌파라고 매도하기 이전에 자기 자신이 너무 오른쪽에 서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성장과 효율을 강조하더라도 사회경제적 약자의 처지에 눈을 돌릴 수 있어야 하며, 반공을 소신으로 삼고 있더라도 한반도의 평화를 고민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독일이나 프랑스 우파 정당의 '격'을 갖는 보수정당이 되어 집권당에 대한 비판에 나서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의 등장으로 우리 사회의 사회경제적 약자는 수십년 만에 자신의 목소리를 정치에 반영할 창구를 가지게 되었다. '물갈이'를 넘어 '판갈이'를 도모하는 진보 야당으로서 민주노동당이 체제 자체에 대해 근본적 비판을 전개하는 것은 당연하며 또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이 야당을 넘어 진정 집권을 꿈꾼다면 '구좌파'류의 체제 비판을 넘어 실현 가능한 정책대안을 제출하고 국가운영의 능력을 입증해야 할 것이다. 민주노동당이 '운동권 정신'의 합리적 핵심을 살리면서도, 노선과 활동방식에 있어 유럽 사회주의 정당과 녹색당의 역사와 경험을 습득하길 기대한다.

새로 구성된 국회가 해야 할 일은 수도 없이 많겠지만 일단 국회의원의 권한 남용을 방지할 법과 제도개선 작업부터 시작하길 바란다. '방탄 국회'를 없애기 위해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대폭 제한하는 국회법 개정이 필요하며 저급.저질의 발언과 행태를 일삼는 국회의원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기 위해 국회 내 윤리위원회의 구성과 절차를 변경해야 한다. 각 당은 비리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당원은 당권을 정지시키고, 유죄가 확정된 당원은 제명하는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요컨대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원 임기 전 소환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요구가 시민사회에서 제기되고 있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정의 노력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 민노당은 정책정당 입증을

제17대 국회에서는 각 정당이 깨끗하고 투명한 모습을 갖추고 정강과 정책을 내걸면서 경쟁하고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를 소망한다. 삼두마차의 말들이 서로 물고 뜯다가 마차를 전복시켜 마차를 부수고 마주인 주권자 국민을 다치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광분마(狂奔馬).나태마(懶怠馬).무능마(無能馬)에게는 채찍과 안락사가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새로운 국민의 대표자들의 건투와 건승을 빈다.

조 국 서울대 교수 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