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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베이징Q&A] 뒷골목 ‘후퉁’은 몽골 유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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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앙일보는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어령 본사 고문의 베이징 Q&A를 연재합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막행사를 지휘하기도 했던 이 고문은 베이징 올림픽 뒤에 숨어 있는 문화 코드를 깊이 있게 짚어 줄 것입니다.

Q:올림픽을 개최할 베이징의 얼굴이 성형수술을 한 여인처럼 몰라보게 달라졌다고 한다.

A: 베이징은 그동안 불결·무질서·후진의 어두운 이미지로 소개돼 왔다. 이미 16세기 때 사람인 사조배(謝肇配)는 “주택은 좁고 번화가는 분예가 가득하다. 여러 곳에서 모인 사람들이 잡거하여 파리·등에가 들끓어 여름철에는 죽을 지경이다”고 탄식하면서도 “경사(京師·수도)란 이 정도는 돼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대도시란 더럽고 혼잡한 것이 당시의 상식이었다. 이러한 전통이 그대로 내려온 것이 서민들의 다주거지역인 ‘후퉁(胡同)’이라는 골목길이다. 1949년 통계만 해도 후퉁이 6000개 이상 됐는데 일부 보존지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재개발 대상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Q: 베이징(BEIJING)-서울(SEOUL)-도쿄(TOKYO)를 합쳐 베세토(BESETO)라고 하는데 올림픽을 치르면서 근대 서구도시로 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동일한 현상이 아닌가.

A: 베이징이 중국의 수도이기는 하나 역사적으로 보면 여진족 등 북방 유목민족들의 침입을 받아 온 변경도시로 몽골이 지배권을 장악한 뒤 원(元)나라 도성으로 건설된 곳이다. 후퉁(골목)이란 명칭도 우물을 뜻하는 몽골말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전통 가옥 집단인 쓰허위안(四合院)도 원대부터의 양식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베이징의 도시계획은 1978년의 개혁·개방정책으로 약진하고 있는 한민족(漢民族) 중흥의 꿈을 반영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2004년부터 기획된 “양축·양대·다중심(兩軸·兩帶·多中心)”의 삼대 패러다임으로 된 ‘신베이징 탄생’이다.

Q: 88올림픽 때의 달동네 재개발식 도시계획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말인가.

A: 그렇다. 후퉁은 단순히 가난에서 오는 불량주택지역이 아니다. 원대의 도로설치법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적 산물로서의 슬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기에 전형적인 크래시앤드빌드(Crash and Build)형의 재개발을 하고 있으면서도 스차하이(什刹海)지구 등에 문화보존지역을 설정해 놓고 있다 .

Q: 단순히 올림픽 사업의 일환으로 이뤄지는 도시계획도 아니라는 말인가.

A: 역사는 살아 있는 화석이다. 베이징의 변화에서 우리는 ‘죽의 장막’이라고 불리던 중국이 2020년에는 1억3710만 명의 외국 관광객을 영입하는 세계 넘버원의 관광 대국으로 지목되는 비밀을 읽을 수 있다. 중국 정부가 지은 90년 아시안게임 메인스타디움과 외국인 건축가의 참여로 이뤄진 새 둥지 모양의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을 비교해 보면 급속한 중국의 변화를 한순간에 포착할 수 있다. 불과 18년이 지났을 뿐이지만 대칭이 비대칭으로, 단조로움이 불규칙한 조형미로 달라졌다. 올림픽 메인스타디움은 획일적이고 폐쇄적인 사회주의 체재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건축물이다. 그러면서도 일방적인 서구 문물의 수입으로 형성된 상하이와 홍콩의 도시 경관과는 다른 현대도시의 얼굴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어령 본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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