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전통주, 담백한 사케 … 어떤 잔을 들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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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호 30면

고급 일본 사케(사진 왼쪽)는 차게 마셔야 제 맛을 살릴 수 있다. 사케는 담백하고 가벼운 맛이 특징이다. 반면 한국 전통주(사진 오른쪽)는 맛이 깊고 다양하다.

사케를 찾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사케란 쌀을 발효해 만든 일본 청주를 말한다. 한국에서 잘 알려진 정종도 일본 사케의 브랜드다. 고급 호텔이나 일식당에서 주로 판매하던 사케는 요즘 ‘이자카야’라고 불리는 일본식 선술집을 중심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사케 판매처만 퍼진 게 아니다. 예전에는 주로 장년층이 사케를 찾았다면 요즘은 20대와 30대가 주 고객층으로 자리 잡게 됐다. 이 바람에 사케 수입이 급증했다. 올해 상반기 수입된 사케는 모두 752t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수입량(515t)에 비해 46.1% 늘었다. 이는 2005년 한 해 전체 수입량(526t)보다 많은 규모다.

할인점서도 사케 판매
사케의 인기에 힘입어 일반 할인점들도 사케 판매에 나섰다. 롯데마트는 지난해 8월부터 1만원 이하의 저가 사케를 팔고 있다. 할인점 중 사케 매출이 가장 많은 곳은 이마트. 이마트는 지난 5월 외국인 고객이 많은 용산역점에 사케 코너를 처음 만들었다. 이어 여의도점·역삼점·양재점·연수점·분당점·죽전점 등으로 사케 코너를 확장했다. 이마트에는 3000원대부터 8만원대 이상의 고가 사케까지 다양하게 구비돼 있다.

롯데호텔의 경우 아예 사케 소믈리에도 두고 있다. 이 호텔 일식당 ‘모모야마’의 사케 소믈리에 김선희 지배인은 “일본 사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고급 사케를 찾는 고객이 늘고 있다”며 “특히 ‘구보타’와 ‘핫카이산’의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사케는 할인점 이외에 ‘모노마트’ 같은 일본 식품 전문점이나 사케 전문 수입상 등을 통해서도 살 수 있다. 대표적인 수입상은 한국월계관이다. 한국월계관은 전국 10여 개의 사케 전문 이자카야 ‘가쓰라’를 운영 중이며 매달 셋째주 수요일 사케 아카데미도 연다. 그 밖에 니혼슈코리아·니혼사케 등에서도 사케를 수입·판매한다. 주점이나 식당에서는 소비자 가격의 두 배 정도를 부른다.

계절에 따라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는 점도 사케의 인기를 더해 준다. 가령 겨울철에는 따뜻하게,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맥주처럼 시원하게 마실 수 있다. 그렇지만 사케의 품질에 따라 지켜야 할 기준이 있다. 대체로 저급 사케는 따뜻하게, 고급 사케는 차게 마셔야 술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긴장하는 한국 전통주
사케의 인기에 한국 전통주 시장이 긴장하고 있다. 와인 열풍에 밀려 가뜩이나 입지가 좁아진 데다 사케까지 전통주 시장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 제조업체들은 사케의 시장 잠식을 특히 우려한다. 소비자층이 일정 부분 겹친다고 보기 때문이다. 전통주 시장은 2004년 이후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2004년 당시 1800억원이던 전통주 시장은 지난해 1500억원대로 축소된 것으로 추산된다.

전통주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국순당은 지난해 말 이후 모두 8개의 신제품 및 리뉴얼 상품을 출시하면서 젊은 소비자층을 공략하고 있다. 이 중 국순당이 야심작으로 내놓은 ‘백세주 담’은 기존의 백세주가 너무 달다는 지적에 따라 나온 단맛이 덜한 제품이다. 국순당은 또 전통주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일제시대 이후 사라져 문헌상으로만 존재하는 전통주를 복원하는 사업이다. 이에 따라 올여름 중으로 백설기로 빚은 이화주를 선보일 계획이다. 국내 2위의 전통주 제조업체인 배상면주가는 최근 민들레 꽃으로 빚은 ‘민들레 대포’를 내놓았다.

사케 제조기술 한국서 유래된 것
원래 사케는 삼국시대에 일본으로 전수된 술 제조 기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일본은 이 기술을 꾸준히 발전시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술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물이 좋고 쌀이 좋은 지방에서는 반드시 좋은 사케가 등장했으며 현재 일본 전역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수천 개의 사케가 있다.

사케는 쌀을 깎아 만든 술이어서 가볍고 담백하다는 평을 받는다. 반면 한국의 전통주는 쌀을 그대로 쪄서 발효하기 때문에 맛이 진한 편이다. 또 사케는 쌀과 누룩 이외에 다른 것을 전혀 첨가하지 않아 맛에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한국 전통주는 버섯·복분자·머루 등 다양한 약용 식물과 과일을 넣어 다양한 맛을 내는 게 사케와 다르다.

일본이 지역 명주를 개발하기 위해 오랜 세월 대를 이어 가며 노력하는 동안 한국은 일제시대와 1960~70년대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전통주의 명맥을 잇지 못했다. 일제가 세금 징수를 쉽게 하려고 집에서 담그던 전통주를 금지하고 대형 양조장에서만 술을 빚도록 한 게 결정타였다. 해방 이후부터 70년대까지 쌀 부족을 이유로 쌀로 만든 술을 금지한 것도 전통주의 맥을 끊는 데 일조했다. 그나마 정부가 전통주 발굴에 나선 때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 이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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