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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랑 집 한 채도 ‘세금폭탄’ 집값 잡겠다더니 집주인 잡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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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종합부동산세 도입 논의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기 직전인 2003년 2월 시작됐다. 당시 노 정부는 국정과제 로 ‘보유과세 정상화’를 내세웠다. 노 정부가 내세운 논리는 부동산에 매겨지는 세금이 불평등하다는 것이었다. 비싼 집에 사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보유과세를 현실화하고, 거래세를 낮추는 것은 조세전문가들이 오랫동안 지적한 부동산 세제 개편 방향이기도 했다.

하지만 집값이 계속 치솟자 세금을 집값 안정대책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변질됐다. 집값이 오르는 이유는 양질의 주택을 선호하는 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급은 뒤로 한 채 투기를 잡겠다고 세금만 올린 것이다. 종부세가 처음 도입된 2005년에는 공시가격 9억원 초과 주택에만 부과했다. 하지만 1년 만에 공시가격 6억원 초과 주택으로 대상을 넓혔다.


진단을 잘못하니 잘못된 처방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세금만으로 부동산값을 안정시킬 수 없고, 국민이 원하는 곳에 공급을 많이 늘려야 하는데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고 말했다. 그 결과 노무현 정부에서 집값은 20% 이상 올랐고, 서울 아파트는 50% 넘게 상승했다.

종부세는 시행 초기부터 문제가 속출했다. 대상자가 2005년 6만2000명에서 지난해 47만1000명으로 7배나 늘었다. 종부세 세수도 매년 1조원 이상씩 늘었다. 이 과정에서 국세청은 세금이 잘 걷힌다고 자랑했다. 경제 부총리는 “세금 무서우면 집 팔고 이사 가라”고 조롱했다.

서울 서초동의 171.6㎡형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낸 종부세는 2006년 117만원이었지만 지난해는 461만원으로 294%나 뛰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같은 세금이 1년 새 네 배로 뛰는 경우는 드물다. 투기와는 관계없이 수십 년간 한 집에서 사는 사람에게도 예외없이 세금 폭탄이 쏟아졌다.

서울 강남의 중형 아파트에 사는 김모(71)씨는 “은퇴 이후 수입이 없는데도 평생 살아온 달랑 한 채의 집에 매년 수백만원의 세금이 나오니 감당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2006년에는 그나마 가진 돈으로 세금을 냈지만 지난해 말에는 은행에서 돈을 꿀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집을 팔기도 쉽지 않다. 집값이 6억원을 넘어 양도소득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집값이 떨어져도 종부세가 더 늘어나는 문제도 있다. 2005년에는 공시가격의 50%에 대해서만 종부세를 물렸다. 하지만 2006년에 과표적용률을 70%로 조정하고, 이후 매년 10%포인트씩 올려 올해는 공시가격의 90%에 종부세를 부과한다. 내년에는 100%로 더 올라간다. 집값이 떨어져도 과표가 올라 종부세가 늘어나는 구조인 것이다.

위헌 논란도 끊이지 않는다. 2005년 종부세를 처음 도입할 때는 개인별 과세였다. 하지만 그해 말 세대별 합산과세로 바뀌면서 부부나 함께 사는 자식이 별도로 집이 있으면 모두 합해 세금을 매긴다. 합산과세는 이미 금융소득 종합과세에서도 위헌으로 결론이 난 것이다.

그래서 종부세를 고치자는 지적이 계속 나온다. 우선 종부세 부과 기준인 6억원은 9년 전인 1999년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자의적으로 정해진 것이다. 그동안 아파트 값이 70%가량 오르고, 물가가 뛴 점을 감안하면 9억원으로 현실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올해 말 종부세 대상은 25만 가구에서 9만 가구로 줄어든다.

또 집 한 채를 보유한 사람(지난해 14만7000가구)과 수입이 없는 은퇴 고령자에 대한 종부세 부담을 덜어 줘야 한다는 목소리도 크다.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실장은 “부동산 거래를 묶고 세금을 늘려 국민의 재산가치를 훼손하는 것은 올바른 정책이 아니다”라며 “투기와 거리가 먼 국민이 피해를 보는 것은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민은 있다. 종부세를 완화했을 때 다시 투기세력이 고개를 들어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질 염려다. 변창흠 세종대 교수는 “투기방지와 세금 부담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보유세의 기본 취지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며 “종부세가 후퇴하면 투기 수요가 생겨 시장 안정을 해칠 것”이라고 말했다.

김종윤·조철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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