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now] “샹젤리제로 돌아와 주오” … 파리,중국관광객 모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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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중심가인 샹젤리제와 이어진 몽테뉴 거리 양쪽엔 대형 명품 매장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한국인 관광객 6∼7명이 22일(현지시간) 조르조 아르마니 매장에 들어서자 직원이 “니하오(중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말하면서 반겨 맞는다. 관광객들이 “한국인”이라고 하자 매장 직원 올리비에는 “한때 중국 손님이 가장 많았는데 요즘은 한국 손님이 더 많다”고 말했다. 그 옆에 있는 루이뷔통 매장에도 왁자지껄하던 중국인 관광객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새 파리의 최고 VIP로 자리매김했던 중국 관광객의 프랑스행이 뜸해졌다. 정치적 이유라는 게 현지의 분석이다. 중국 정부가 독립을 요구하는 티베트인들을 유혈 진압하자 프랑스 정치인들이 이를 비난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에 불참할지 모른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파리에서는 성화를 봉송하다 시위대의 방해로 불이 꺼지기도 했다.

그러자 중국인들은 프랑스 제품 불매 운동과 함께 프랑스 관광 가지 않기 운동을 시작했다. 2개월여가 지난 지금 그 여파가 파리 시내에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주프랑스 중국대사관에 따르면 지난해 프랑스를 찾은 중국인 여행객은 100만 명에 달했다. 순수 관광객만도 6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중국인들은 숫자도 많지만 씀씀이도 큰 편이어서 파리 상인들에게는 고마운 손님들이었다. 파리에 오는 전체 관광객이 하루 평균 208유로(약 32만2000원)를 쓰는데 비해 중국인 관광객은 이보다 20%쯤 많은 247유로를 지출했다. 이들이 쓰는 돈의 대부분(82%)은 샹젤리제 거리나 시내 백화점에서 풀린 것으로 조사됐다. 그만큼 쇼핑을 많이 한다는 얘기다.

큰 손님들이 뜸해지자 다급해진 파리 상인들이 나섰다. 일간 르 파리지앵에 따르면 샹젤리제 상인연합회는 최근 중국의 대형 잡지사 기자 4명을 모셔왔다. 중국 손님들은 화장품·향수 백화점인 ‘세포라’에 들러 무료로 네일 서비스를 받았다. 최근 2개월 사이 이 매장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고 한다. 루이뷔통 본점에도 들렀다. 이 회사 지배인은 본점의 직원 240명 가운데 50여 명이 중국어를 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려주며 자존심을 세워줬다. 샹젤리제 상인연합회는 중국인 관광객 수를 원상 회복하기 위해 올가을에는 상하이로 직접 날아가 특별 이벤트를 열 계획이다.

기업들도 중국인 관광객의 마음 돌리기에 분주하다. 루이뷔통 등을 거느린 세계 최고 명품 그룹 LVMH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프랑스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사르코지 대통령을 겨냥, “정치적 이유로 베이징 올림픽 불참을 거론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명품 시장의 미래라는 중국인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프랑스에서 재산이 가장 많은 아르노 회장은 사르코지 대통령과 각별한 관계여서 더욱 눈길을 끌었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결국 다음달 8일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하기로 했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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