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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공화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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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역대 정권을 1공화국, 3공화국 등으로 부르는 것은 정치체제에 따른 시대 구분법이다. 프랑스 헌법사의 시대 구분법을 따왔다. 프랑스는 1789년 대혁명 이후 수차례 정치체제가 바뀌었다. 세 번의 입헌군주제, 두 번의 제정정치, 반독재정 한 번, 다섯 번의 공화제를 경험했다. 공화제가 중단됐다가 부활할 때마다 제 몇 공화국이라고 불렀다.

1공화국은 프랑스혁명 이후 입헌군주제를 거쳐 국민공회가 집권한 1792~1804년이다. 프랑스혁명의 절정기다. 현재의 프랑스는 1958년 드골 대통령 이후 5공화제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5공화국의 여섯 번째 대통령이고, 최근 5공화국 들어 가장 대규모의 헌법 개정을 추진해 주목받고 있다. 대통령의 의회연설권 부여 등 대통령 권한 강화가 골자다.

우리나라는 48년 건국 이후 줄곧 공화정이 유지됐기 때문에 프랑스식의 공화국 분류는 어폐가 있다. 정부 형태를 바꾸는 개헌이나 정치적 격변을 기준으로 한 한국식 구분법이라 보는 게 맞다. 이승만 대통령의 1공화국(1948~60)에 이어 4·19로 대통령제에서 의원내각제로 바뀐 2공화국(60~61), 5·16으로 다시 대통령제로 바뀐 3공화국(61~71), 유신헌법의 4공화국(72~79), 전두환 정권의 8차 개헌과 5공화국(80~87)이다.

6· 10 항쟁 이후 대통령제가 간선에서 직선으로 바뀐 노태우 대통령부터는 6공화국이다. 그 후에는 공화국이라는 표현 대신 ‘XX정부’가 등장했다. 정부의 역사성과 이념을 내세운 문민정부, 국민의정부, 참여정부가 그것이다. 초창기 ‘실용정부’를 내세웠던 현 정부는 그냥 이름을 단 이명박 정부를 택했다.

최근 세간에 ‘5공화국’이 부쩍 회자된다. 특히 정부의 방송정책과 관련해서다. 정부는 ‘5공 청산’을 내세우고 언론노조와 방송계는 ‘5공 회귀’라고 맞선다. 가령 정부는 MBC 소유 구조, KBS 2TV·코바코 등의 문제가 80년 언론통폐합으로 탄생했으니 그 잔재를 청산해 이전으로 돌려놓겠다는 것이다. 반면 YTN 등 일련의 방송계 ‘코드 인사’와 KBS와 KTV를 혼동한 청와대 당국자의 발언 등은 ‘5공 회귀’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정부 비판적인 TV 프로그램에 검찰 수사로 대응하고, 방송사 사장 교체에 정권의 운명이 걸린 듯하는 모양새도 그렇다.

청산이든 회귀든, 21세기에 ‘5공’이라는 악령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불행이다. 5공이라는 먼 역사 속의 단어가 느닷없이 21세기 시민의 삶을 몇 달째 흔들어 놓고 있는 최근 상황은 국가적 피로감을 가속시킬 뿐이다. 더 중요한 것은 5공식 밀어붙이기를 용인할 21세기의 시민들은 더 이상 없다는 점이다. 이제는 완력이나 무력이 아니라 동의로 국민의 마음을 사야 하는 시대니까 말이다.

양성희 문화스포츠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