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오세창 특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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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간송(澗松)전형필(全鎣弼)은 일제(日帝)식민지시절 사람들의 관심 밖에서 산일(散佚)돼 가던 우리 문화재를 지킨 애국자였다.서울 종로의 10만석 거부(巨富)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가산(家産)을 탕진한다는 소리를 들으면서까지 문화재 수 집에 몰두했다.개인미술관으로선 고미술분야에서 국내최고로 평가받는 간송미술관은 국보 10점.보물 11점을 비롯,문화재 수만점을 소장하고있다. 간송이 문화재에 눈뜬 것은 두 사람의 영향 때문이었다.
춘곡(春谷) 고희동(高羲東)과 위창(葦滄) 오세창(吳世昌)이 그들이다.특히 위창은 간송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쳤다.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학통(學統)을 이은 역매(亦梅) 오경석(吳慶錫)의 아들로 금석학(金石學)의 대가(大家)였으며 문화재 감식(鑑識)에서 당대 제일이었다.간송은 위창으로부터 문화재 보는 안목을 키웠다.그런 의미에서 간송컬렉션은 위창의 탁월한 감식안과 간송의 막대한 재력이 어우러진 걸작 (傑作)이라 할 수있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중 1인으로 2년여 옥고(獄苦)를 치른 위창은 그후 한묵(翰墨)생활로 일관(一貫)했다.그는 부친과 자신이 수집한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1928년 『근역서화징(槿域書畵徵)』을 펴냈다.삼국시대에서 근대에 이르는서화가 1천1백17명을 사전(事典)식으로 총정리한 이 책은 지금도 한국서화사 연구의 필독서(必讀書)로 꼽히고 있다.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은 이 책이 나오자 『암흑(暗黑)한 운중(雲中)의 전광(電光)』이라고 극찬했다.이 밖에 고려말에서 한말까지 이름있는 서적(書跡)을 모은 『근역서휘(槿域書彙)』,조선초부터 일제때까지 서화가들의 인장(印章)을 모은 『근역인수(槿域印藪)』를 편찬했다.
위창은 또 당대 최고의 서예가중 한 사람으로 전서(篆書)와 전각(篆刻)에 뛰어났다.특히 전서와 예서(隷書)를 혼합하거나 와당(瓦當)과 갑골문(甲骨文)을 혼합한 글씨는 위창만의 독보적인 것이었다.
서울 예술의 전당 서예관에선 12일부터 내달 7일까지 근대서예사의 거목이었던 위창을 기리는 특별서예전이 열리고 있다.애국지사.종교인.언론인.서예가 등 다채로운 활동으로 한국 현대사에큰 족적(足跡)을 남긴 위창의 예술세계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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