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완벽한 반환 위해” 고발 “노무현 정부 흠집내기” 반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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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노무현 전 대통령 측의 기록물 유출 사건이 검찰 수사란 새 국면을 맞았다. 국가기록원이 24일 자료 유출 관련자 10명을 검찰에 고발함에 따라 신·구 정권 간 불붙었던 첨예한 갈등은 결국 사법적 심판대에 오르게 됐다.

정부로서도 검찰 고발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고발장은 이미 작성됐고, D-데이를 24일로 잡아 놓았지만 정부 내에선 23일 밤까지 치열한 논란이 계속됐다. 23일 밤 국가기록원에서는 “정부 내 기류가 고발을 유보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어 24일 고발은 물 건너 갔고, 고발할지조차 불투명하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그만큼 24일 고발은 전격적이었다.

최종적인 방침이 우여곡절 끝에 고발 당일 결정된 것은 “전직 대통령 측과의 갈등을 검찰로 가져가면 현 정부에도 부담이 된다”는 정부 내의 고발 반대론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공식적으로 “정치적 문제가 아니고 법과 원칙의 문제”라거나 “고발 여부는 국가기록원이 독자적으로 판단할 것”이란 입장을 견지해 왔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 측을 고발하는 것 자체가 고도의 ‘정치적 행위’인 탓에 단순히 국가기록원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고발에 대한 봉하마을의 첫 반응 역시 “현 정부의 의도가 기록물을 돌려받는 데 있는 게 아니라 이전 정부를 흠집 내려는 것임이 밝혀졌다. 정치적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진 것”(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이라는 내용이었다.

지난 16일 ‘이명박 대통령께 드리는 편지’를 통해 “기록사본은 돌려드릴 테니 실무자들을 희생양으로 삼지 말아 달라”고 했던 노 전 대통령은 이날 검찰고발 사실을 보고받고 “알았다”고만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정치권 일각에선 미국산 쇠고기 수입의 원조책임론을 놓고 국회 내에서 불붙고 있는 논란을 청와대가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어차피 쇠고기 문제를 놓고 전 정권과의 일전 (一戰)이 불가피하다면 ‘불법적인 자료유출’이란 호재(好材)를 굳이 묻어둘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측은 이 같은 관측에 대해 “명백한 불법행위인 자료유출과 쇠고기 논란은 전혀 별개이며, 청와대는 검찰고발 과정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다”고 펄쩍 뛰고 있다.

국가기록원 측은 이날 고발의 불가피성을 설명하며 “자료 유출자들의 협조를 통한 행정적 회수 절차로는 더 이상 ‘완전한 기록물 회수’가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 측이 하드디스크만 반환하고 봉하마을에 남아있는 서버 반환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에선 노 전 대통령 측이 자료를 완벽하게 반환했는지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하다는 취지다.

그동안 국가기록원 측은 “서버의 로그(접속) 기록을 확인해야 ▶제2, 제3의 파생 유출이 없는지 ▶누가 기록물에 접근했는지 ▶남아있는 기록물이 없는지 ▶유출된 하드디스크가 원본인지 사본인지 등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해 “서버 등 하드장치는 개인 사유물”이라고 맞선 노 전 대통령 측과 대립해 왔다.

따라서 서버의 반환을 위해 전직 대통령 사저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질지가 검찰수사 초반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일단 검찰고발이 이뤄진 이상 수사가 어떤 폭과 강도로 이뤄질지는 예측불허다. 특히 불법 자료유출에 누구의 자금이 동원됐는지 등 민감한 사안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낼 경우 전 정부에 대한 총체적인 사정작업으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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